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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루 Nov 22. 2023

감정 저장고는 안녕하신가요?

청소하고 가꾸기



[사진.jpg]


아침 9시 20분.

사내 메신저 목록 가운데 P의 이름이 상단으로 올라왔다.

동시에 숫자 1이 생기며 P에게서 사진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안 봐도 비디오.


'또 누군가와 나눴던 메신저 내용이겠지.'


지옥철에서도 텐션을 끌어 올리기 위해 쿵작쿵작 드럼 연주를 들으며 출근했건만.

20분 만에 나의 텐션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P는 새로 합류한 회사 동료인데 사내 메신저와 카카오톡을 번갈아 사용하며 시시때때로 불평을 토로했다.

누군가와 대화한 내용을 캡처해 보내기도 하고, 대화 상대나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얼마나 어이없고 화가 나는지 일일이 쏟아내는 식이었다.


1, 2, 3.

P 이름 옆으로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나의 스트레스 지수도 올라갔다.

나는 한숨을 쉬며 P의 이름을 눌렀다.

그가 보낸 사진은 다른 팀 Y가 보낸 메신저 내용을 그대로 캡처한 것이었는데, 대충 세어봐도 무려 20줄이 넘었다.

Y도 만만치 않게 성질머리가 있다는 걸 알기에 읽어보지 않았음에도 불쾌함이 한가득 전달되었다.


나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무심하게 그냥 울었다.


[ㅠㅠㅠ]


하지만 부정적 기운이 담긴 메신저는 지속되었다.


[하하...]

[왜 이러는 걸까요 ㅋㅋㅋ]


건성으로 훑은 나는 그 뒤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조용히 메신저 창을 닫고, 그가 묻힌 부정적 감정을 툭툭 털어버린 뒤에 업무에 몰두했다.


더 이상 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초반에는 위로도 해주고 방향성도 제시해 줬다.

하지만 그 언행이 자기변명에 가까운 불평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그저 웃거나 울었다.

[ㅋㅋㅋ] 또는 [ㅠㅠㅠ] 이렇게.


나는 그의 멘토나 선임도 아니고 심지어 같은 팀도 아니다.

나와 약간 겹치는 업무가 있고, P의 경우 소속된 팀 없이 독립적인 업무를 하기에 호의로 챙겼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있었다.



이처럼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감정 쓰레기통은 부정적이거나 불필요한 감정을 버리는 마음의 공간이다.

제때 비워내면 참 좋을 텐데, 부정적인 감정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끈적한 타르 같아서 청소하기가 매우 곤혹스럽다.

게다가 내 감정 쓰레기통을 애용하는 사람은 의외로 가까운 사람들이어서 치우기를 반복해도 너무나 빠르게 쌓여버린다.


[내 감정 쓰레기통 애용자]

1. 가족, 친구, 연인 : 아주 친밀한 관계

2. 직장 동료 등 주변 지인 : 적당히 가까운 관계

3. 나 자신 : 완전 일치된 관계


내가 스스로 주는 감정만으로도 쓰레기통이 넘칠 지경인데, 다른 사람이 오물 같은 감정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면 말 그대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 된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의 방법이다.

가까운 사람이기에 혹은 나보다 갑의 위치에 있기에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용기를 내볼 필요가 있다.


따로 사는 가족이라면 연락을 일정 기간 끊고, 같이 산다면 몇 개월이라도 독립해서 살아보길 추천한다.

또한 그의 불평에 공감하는 척도 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척’을 상대방은 ‘불평에 동조한 것’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렇게 거리 두기를 실천했음에도 끊임없이 내 감정 쓰레기통을 애용하려 든다면, 과감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만 얘기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이다.


스스로 감정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실수에 대한 힐난, 자책 등인데 그럴 땐 객관적으로 적어 보았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어떠한 행동을 했는가, 왜 그렇게 했는가, 내가 처한 상황은 어떠했는가. 정말 내 잘못인가.

곰곰이 생각하고 나면 감정 처리에 대한 방향이 나온다.


내 탓이 아니라면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외치고 쓰레기통을 비운다.

만약 내 탓이라면 우울함에 빠지기보다 단점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개선 방안에 집중하면 된다.

그러면 어느새 감정 쓰레기통이 비어 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이렇게 청소했는데,

어느 날 내 감정 쓰레기통이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멍 뚫린 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오르는 바닷물을 아무리 퍼내도 배에는 계속 물이 들어오는 것처럼,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쓰레기통을 비워도 감정 쓰레기는 끊임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쳐있을 때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감정이 쌓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의 힘으로 막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어차피 감정이 머무는 공간이 있어야만 한다면 그 공간을 쓰레기통이 아니라 저장고로 바꾸는 건 어떨까?


그래서 하기로 했다.

감정 쓰레기통을 ‘감정 저장고’로 탈바꿈하기로.


나는 시간을 내어, 묵은 감정과 새로운 감정을 다시 복기하고, 분석하고, 느껴 보았다.

그렇게 부정적 감정을 깨끗하게 비워낸 후에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감정으로 채웠다.

그러자 감정 쓰레기통은 기분 좋은 감정을 차곡차곡 담아두는 보물 저장고가 되었다.


좋은 감정을 채우는 방법은 아주 쉽다.

삶에서 행복했던 기억 5가지만 떠올리면 된다.


감정은 주로 기억에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당시를 회상하며 긍정적인 감정에 푹 빠지면 저장고는 금새 반짝이는 보물로 가득 찰 것이다.

기쁨, 사랑, 보람, 만족, 감사, 용기, 안도감 등 내가 저장해둔 감정은 버거운 사건이 찾아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감정 해방을 이루고 싶다면 감정 쓰레기통을 청소하고 행복한 감정을 가득 담는 감정 저장고로 가꿔보자.


힘들 때 꺼내 먹을 수 있도록.

그 힘으로 오랜 시간 안녕하도록.




P.S 감정 쓰레기통 청소법(감정 느끼기, 숨은 감정 찾기 등)은 앞으로 자세하게 안내됩니다. 다음 연재글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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