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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가을 Aug 12. 2022

에비스 골목에서


에비스 골목길을 따라 쭉- 걷다가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어느새 욱신욱신 아파오는 발가락들 때문에

어디로 갈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에 띠는 선술집으로 들어갔다.


치익-치익-

눈 앞에서 구워지는 꼬치들의 냄새는

자연스레 안주가 되고,

알아듣지 못하는 낯선 대화들은

어느샌가 배경음악이 되는 시간.

묵직한 맥주잔을 들어 크게 한 모금 들이켰다.



주변에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

하지만 분명 나는 이방인.

그래서인지 더 홀가분한 해방의 일탈감.

나긋한 목소리로 전해주는 안주들을

입 속에 넣어보며

'좋다-' 라는 두 글자를 내어봤다.


뺨에 분홍빛 색을 더한 얼굴들이

하나 둘 가게를 나가고,

핸드폰 시계를 보니 어느 덧 늦은 시각.

나도 이제 좀 가벼워진 발가락들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어느 새 아까와는 많이 달라진 골목의 풍경.

눈 앞에 하나 둘 우산들이 펼쳐졌다.

비 때문에 더 차가워진 바람에

겉옷을 걸치고 다시 걸음을 떼어본다.


우산을 쓴 사람들 사이로,

전단지를 나눠주려고 준비 중인 사람 둘이 보인다.

잠깐 바라본 사이,

그 둘은 점점 나와 거리가 좁혀지고

둘 중 한 명이 자신의 비닐우산을 건넸다.


잠시 들어달라는 것인지,

아님 우산을 쓰라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전혀 일본어를 못하던 시절의 나,

그에게 영어로 물었지만

그냥 우산을 쓰라는 듯한 손짓, 몸짓을 보이면서

미소를 보였다.


평소에 의심많던 나도

여행이라는 이유에서인지

이 곳의 분위기 때문인지

고맙다는 어색한 말을 하며 우산을 건네받았다.


에비스 골목을 내려와 지하철을 타고 숙소 근처에 오니 빗줄기가 거세졌다. 그 시람들은 무사히 전단지를 다 나눠주고 갔을까?



손까지 흔들며 우산을 주고 간 사람들.

왜 우산을 주었는지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받아든 투명 우산 위로

빗방울이 톡!톡! 기분좋게 떨어진다.


진심엔 진심으로 답해야겠지.

언제가 다시 마주칠 수는 없겠지만

그 희박한 가능성에도 진심을 담아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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