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행복할 수 없는 구조
대한민국 사회는 더욱더 아빠를 불행하게 만든다. 이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일들을 보면 사실 아빠들이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 너무나 세련되었고 사실 그런 아버지 세대(전후 세대를 일컬음.) 덕분에 고도의 경제 성장으로 지금의 부를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구조적 문제는 사실 나조차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그런 부모세대에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부모 세대가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서 만들어준 유산이 고작 똑같이 고통받는 사회라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치 수백 년에 걸쳐 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해 싸웠던 유럽의 아스라이 사라져 간 민중의 영혼이 지금의 유럽 사회를 보며 적어도 그들의 희생이 갚졌다고 말하지 억울하다거나, 너희들도 계속 고통 속에 있어야 한다고 하진 않을 것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의 의견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MZ세대를 언급할 때 많이 나오는 형용사 중 하나가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불행한 세대라는 것이다. MZ세대를 80년대생부터 일컫는다고 할 때 이중 상당수는 아빠다. 그리고 아빠가 될 사람들이지만 아빠가 되지 못하는 상황인 경우도 많다. 고질적으로 아빠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 사회구조 때문에 용기 내어 아빠 되길 꺼리는 것이다. 도대체 왜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에서 아빠는 희생과 헌신의 대명사다. 부모 세대부터 그래왔다. 아니 부모의 부모, 그 할아버지 세대에도 아빠는 희생과 헌신을 해야 했다. 그때는 그게 필요했다.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 지금도 아빠가 희생과 헌신만으로 그 존재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인가? 명백하게도 지금은 상황이 너무나도 달라졌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급진적이고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가 지금 우리 세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구조의 변화는 너무나도 더디기만 하다. 과감하게 희생과 헌신을 벗어버리고 내 행복을 찾아 떠나는 아빠를 선택한다는 게 머뭇거려지는 것도 당연지사. 여기에서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언급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문제는 단연코 부양의 의무에 대한 범주가 끝도 없다는 데 있다. 경제와 관련한 이야기인데 사실 제일 복잡하고 난해하면서도 내 가치관이 확고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마지막에 언급하고자 한다. 두 번째 문제는 그렇게 성장한 아빠들이 가질 수 있는 꿈의 크기가 너무 한정되어 버린다는데 있다. 일본에는 코이라는 잉어가 있다. 사는 환경에 따라 크기가 결정되는데 작은 어항에 넣고 키우면 5cm 정도 자라지만 연못에서는 5배인 25cm까지도 자란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아빠들을 어항에 넣고 키우면서 희생과 헌신 이외의 꿈을 키우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니 꿈의 크기가 고작 5cm 자라는 것이다. 무슨 얘기냐고? 이 시대 대다수 아빠들의 취미는 술, 여자, 담배, 믹스커피, 야구, 스크린 골프. 이 정도로 좁혀져 있지 않나. 애초에 다양한 취미를 가질 수 없는 환경. 그보다 더 큰 취미를 가지려면 돈부터 있어야 된다는 관념을 심어놓았고 너무 피곤하게 착취당한 나머지 집 주변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취미 외에 멀리 나갈 수 있는 취미를 가지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그 영향으로 취미가 선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데 있다. 취미는 인간에게 있어서 삶의 목적에 가깝다.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에서 나온 멋진 대사 '시, 미, 낭만 그리고 사랑이야말로 삶의 목적이다.'에서 바로 낭만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여가를 위해 태어났다.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더 많이 놀려고 태어난 거다. 창조주가 창조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마음껏 누리고 만끽하면서 신을 칭송하기 위해 태어난 우리가 일하느라 한정된 취미를 소비하느라 매일 같은 풍경만 오가며 창조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근데 거기서 오는 성취로 성장하는 것은 조금 오르는 연봉, 조금 오르는 나의 성취, 조금 오르는 내 명성일지 모르겠지만 회사는 그런 나를 인생 통째로 갈아 넣어 착즙 해서 쭉쭉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 성장이 있어야지 사회가 부도 쌓이고 여유가 생기는 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왜 같이 성장할 수는 없는 것인가? 왜 더 많이 놀고, 그 가운데 인간적인 성장을 통해 꿈을 꾸고, 이루고, 가치관을 세워 그 목적을 이루고자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인가?
여유가 없는 사회다. 착즙 당하는 사회다. 그러니 차라리 양육 대신 홀로 즐기는 삶을 선택하겠다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 즐기는 삶을 자녀 세대에게 물려주고 자녀 세대가 또 그렇게 꿈을 꾸며 살아가게 만들 용기를 주지 않는 것이다. 기껏해야 지금의 아빠들 역시 자녀에게 물려주는 삶이란 착즙 당하고 술로 메우는 삶이 아니겠는가. 슬프고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낭만을 꿈꾸는 아빠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 세상에 낭만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삶의 이유도 사라진다. 인류가 이어져야 할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리바이어던 같은 국가, 기업 등과 같은 어떤 존재를 위해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목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낭만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그 낭만이 곧 인류 번영의 목적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