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배움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6차 교육과정으로 공교육을 마친 80년대 생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때 기술, 가정, 미술, 음악과 같은 과목을 들었다. 특히 중학교 때 배운 기술, 가정은 내 삶에 있어서 두고두고 가장 쓸모 있는 배움 중에 하나였다. 가정시간에는 요리와 간단한 목공을 배웠다. 덕분에 나는 지금도 곧잘 요리를 하고, 전원주택에 살면서 간단한 집 보수는 내가 직접 한다. 외벽 크랙 실리콘 보강과 같은 수준이나, 계단에 조각난 콘크리트를 보수하는 정도도 가능하다. 더해서 군생활 간 배운 여러 기술들도 매우 유용했다. 기술 시간에 배운 지식을 토대로 자동차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어서 자동차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미술을 배워서 지금은 웹툰을 연재하고 있으며, 음악을 배워서 어떤 악기든 빨리 배우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악보를 볼 줄 알고, 조바꿈이나 코드에 대한 이해가 있다. 성악도 배운 적 있어서 실력이 좋지는 않지만 곧잘 성악도 부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배움들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만들었고, 그때 배운 것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필요하면 곧잘 배워서 써먹는다는 것이다. 이것들 중 내 수능 점수에 도움이 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삶을 매우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심지어는 교련 마지막 세대인데 교련 시간에 배운 구급법까지도 쓸모 있는 살이 있는 교육이었다. 군대에 가기 전에 이미 붕대법과 CPR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우리나라 초일류 대학을 나와 소위 말하는 '사'자 들어간 직업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다양한 지식을 갖고 살고 있다. 더불어 내가 가진 이런 지식들이 가족들에게도 매우 유용했다. 계절마다 어떻게 건강 관리를 해야 하는지, 5대 영양소를 기초로 식단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정원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며, 집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동차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들과 캠핑할 때 불은 어떻게 피우고, 재료는 어떻게 손질해야 하며, 텐트는 어떻게 치고, 악천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 중에서 '뭐 나도 그런 건 다 할 줄 알아.'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잘 배운 아빠다. 의외로 그렇지 못한 아빠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많은 사람과 지내면서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군대에 입대하는 젊은 용사들은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부모님들이 지휘관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을 잘 돌봐달라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대로 된 배움으로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마쳤다면 제 몸 하나 건사할 수 있는 정도의 삶에 필요한 기술들은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배움 아닐까? 우리가 배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12년 동안 배워서 수능 잘 봐서 좋은 대학 가기 위한 것이라면 12년의 인생이 너무 아깝고, 비용 대비 효율이 너무 적다. 하지만 요즘 교과과정에서는 이런 진짜 배움이 사라져 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재난 영화를 보다 보면 늘 영웅은 멀리 있지 않다. 아빠가 늘 영웅으로 나온다. 이 시대의 아빠들은 기후 위기와도 싸워야 하며, 좀비와도 싸워야 한다. 외계인과도 싸우고 심지어 시간과도 싸우는 아빠가 있다. 인터스텔라의 아빠는 시간과의 싸움으로 딸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 이런 아빠들은 늘 가정적이며, 가족을 그 어떤 존재보다 우선시한다. 때로는 이런 아빠가 너무 과하다고 느껴져서 자녀들이 이해 못 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재난을 겪고 나면 아빠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고, 또 자녀 역시 그런 아빠로 자라난다. 세상의 기준에서 대단할 것이 없는 아빠들이 주인공으로 나와도 적어도 가정에서는 영웅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아빠가 우리가 생각하는 아빠에 대한 심상일 것이다. 그런 아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지식이 아니라 정말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소위 말하는 잡지식이며, 가족에 대한 사랑이 전부다. 심지어는 자녀들에게 금융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금융 조기 교육을 부추기는 경우도 많다. 그것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분명히 금융에 대해서 일찍 배운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마다 조금씩 가치관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자녀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는 부모라면 세상의 냉엄함과 그 이치를 깨우치는 게 세상을 살아가는 진정한 지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의 경우엔 좀 더 낙관주의자에 가깝다. 세상은 아름답고 우리는 그것을 마음껏 누리고 느끼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배워야 할 진정한 교육은 수단에 있지 않고 목적에 있다. 존재하는 그 자체. 키팅 선생님이 말한 시, 미, 낭만, 사랑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과목들. 과연 우리는 그런 과목들을 얼마나 신경 쓰고 또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있을까? 진정한 배움은 그것을 통해 이득을 얻거나 권력을 얻는 데 있지 않다. 그 자체를 통해 세상을 더욱 선명하게 보려는데 있다. 행복한 아빠의 자녀 교육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으며, 행복한 아빠들은 그런 배움을 배워왔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배운 것으로 내 환경을 꾸미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이웃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삶. 그것을 위해 우리는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