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생명체

by 제주 아빠

쏴아 쏴아 불어오는 바람에 맞춰 흔들리는 소리가 파도 소리를 닮았다. 여름날 시원한 그늘에 더해 청량한 소리까지 들려주는 내가 좋아하는 나무 플라타너스. 여기저기 참 많이도 심어져 있는 이 나무에서 때아닌 하얀 눈송이가 잔뜩 나부낀다. 솜털처럼 가벼우니 바람에 한가득씩 흩날려 겨울 눈발과 봄 벚꽃발에 이어 이제는 꽃가루발까지 흩날리는 것도 떨어지는 것도 많은 계절들이 이어진다.


눈이랑 귀랑 코랑 이어진 게 확실하다. 마스크를 분명 썼는데도 코가 간질 한 게 눈앞에 가득 보이는 이 꽃가루들이 분명 눈을 통해 코를 간지럽히는 거다. 코시국에 재채기하면 눈총 받기 일쑤지만 도통 재채기를 숨길수가 없다. 눈도 감고 다녀야 할까.


온 세상을 뒤덮을 정도의 엄청난 꽃가루들을 헤집고 걸어 나가는 게 지난겨울 눈발 헤치며 지나갔던 길보다는 포근해서 좋지만 눈보다 털어내기가 수월하진 않다. 엄청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웬만한 건물보다 높이 아름드리 자란 나무도 이렇게 많은 꽃가루를 날려 보낸다. 꽤나 늙은 나무일 텐데도 여전히 건재한 이들의 수명에 인간의 삶은 그저 찰나에 불과하다 느낀다.


선한 영향력도 이처럼 늙지 않고 길게 오래도록 공기 가득 퍼져나가길 바라본다. 그렇게 안착한 토양에 또 새 생명이 싹을 틔우고 수백 년 뒤 인간이 사라지고 없을 이곳에도 여전히 나무는 건재하길 바란다. 수군대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간을 대신해 그저 묵묵히 바람에 제 씨앗 흘려보내며 세상을 뒤덮는 모습에 선한 영향력이란 것은 소리도 향기도 없는 공기와 같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플라타너스를 참 좋아한다. 어릴 적 살았던 아파트 놀이터 옆 공터에 우리 아파트보다 더 높은 플라타너스가 있었다. '전설의 나무'라고 불렀다. 작은 나로서는 그 끝을 가늠할 수도 없는 거대함이 꼭 전설의 이야기 속에 나올법한 생명체처럼 느껴졌었다. 어김없이 여름철 그 널찍한 잎이 바람에 나부끼며 귀로는 시원한 파도소리를 만들어줬고 그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 시원한 촉감을 느끼게 해 줬다. 보고 있노라면 푸르른 하늘과 녹색의 잎이 조화로워 눈이 즐거웠으며, 왠지 모르게 특유의 향도 청량감이 있게 느껴졌다. 먹어보질 않았으니 오감을 만족시켰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나무 그늘 아래서 놀고 들어온 저녁밥이 맛있었으니 간접적인 영향을 포함하여 오감을 만족시켰다고 하면 조금 더 사실에 가까우리라.


추억이 깃든 그 플라타너스는 아니지만 모든 뿌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시구처럼 그때 그 플라타너스는 비록 이후 뎅강 잘려나가 버렸지만 여기 있는 플라타너스도 그 플라타너스와 다를 바 없으리라 생각되어 반갑다. 겨우내 스산한 모습이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이처럼 생명력 가득 품고 뻗어나가니 반갑고 좋다. 플라타너스처럼 살아봐야겠다. 그게 한여름 잠깐이더라도 감당 안될 정도로 강력한 생명력을 뿜어내어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널리 퍼뜨려야겠다. 그게 내가 지금 이 일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마침 오늘은 지구의 날이다.(이 글을 쓴 시점은 4월 22일 입니다만 23일 오늘 업로드하였습니다.) 나는 사라져도 지구는 남을 것이다. 그 지구 위에 나의 선한 영향력도 뿌리내려 그 생명력 이어가길 바라본다.


검정 자동차는 꽃가루에 쥐약이란것만 제외하면 이 계절이 나쁘지않다.


<제주 아빠 브런치를 사랑해주시는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주 아빠의 제주 생활 연재는 프롤로그 - 30편 - 에필로그 순으로 이어질 예정이고 이후에는 독립출판사로 출판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에필로그를 아직 살아내고 있는 상태다 보니 글의 연재가 늦어짐에 심히 양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록 복직하여 현업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주와의 삶이 이어진다는 것에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군다나 이 삶이 제주에서 오롯이 가족과 보냈던 육아휴직 못지않은 삶의 풍요로움을 나누고 있어 어서 빨리 독자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다만, 100% 확정되는 순간까지는 조금 더 겸손해보고자 하여 연재가 늦어지는 것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즐거운 우리 가족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봄기운 가득한 이 시절 마스크를 쓰더라도 꼭 햇빛 쬐고 꽃볕 쬐고 푸른 새싹 기운 잔뜩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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