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뉴스쇼
※ 내용과 별개로, '뉴스쇼'라는 해괴한 단어가 등장해 버렸다. 꼬들… 이러기야? 5번째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이런저런 단상들을 꽤 적어두었는데, 죄 지워버렸다. 지금 보니 참 빤한 얘기기도 하다. 좋은 뉴스 좀 보여줘~ 하는, 훈훈한 유튜브 영상 댓글로 200개쯤은 달려 있을 법한.
급하게 조문을 다녀왔다. 재킷을 입기엔 덥고 습한 날씨였고, 급하게 다이소에서 산 2000원짜리 넥타이는 실속 없이 번들거렸다. 조의금 봉투의 뒷면에 '아무개 친구'라고 적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민망했다. 친분을 과시하는 것처럼만 느껴져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친구여서 반색하지 않고자 노력해야 했다. 친구는, 야위거나… 핼쑥해 보이진 않았다. 다만 무언가를 잃은 사람 특유의 얼빠짐, 다른 어떤 것도 거슬려하거나 혹은 거슬려하지 않는 독단적인 슬픔이 비쳐 보였다.
언제쯤 사람을 위로하는 일에 능숙해질 수 있을까? 친구와의 대화는 즐거웠지만 자주 끊겼다. 평소라면 생각 없이 던졌던 말들을 새삼스레 집어 들어 그 모서리를 살피는 사이, 타이밍은 면면히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누군가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된다는 말, 자주 들었고 또 느껴도 보았지만 위로의 시간은 늘 나의 무능을 뼈저리게 체감하는 순간인 듯하다.
돌아오는 길엔 영화 <그린북>을 20분으로 요약한 영상을 보았다.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라고 소개한 것이 무색하지 않게 다소간에 충만해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전체를 본 게 아닌지라 단언하기는 민망하다.) 다만 주요하게 느껴진 것은 인간의 선의. 자그마한 선의가 올바르게 작동하는 몇몇 장면들이 주는 행복감이나 만족감이 대단했다. 지친 하루의 위로를 받았다는 댓글이 꽤나 많은 것을 보면, 어쩌면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규범이나 관습이나… 여타의 것들로 강제되지 않은, 순수하게 자발적인 선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오늘 조문을 간 것은 나의 선의였을까? 그랬다면, 그 선의가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앞으로도, 어쩌면 더 자주 전해 듣게 될 이러한 뉴스들에 대해 선의를 보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