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어 에세이] 시월 십이일

2. 대용

by 한물

언젠가 동료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일부 남성들은 엄마 대용으로 아내를 필요로 한다."

(실은 더 강한 표현이었습니다만…)


다음날 아침에 조금 후회하기는 했다. 뭐랄까, 굳이굳이 '일부 남성들은'이라고 짚은 점이, '전 아니에요!'라고 열렬히 어필하는 것처럼 들렸을 것 같아서. 친구들을 일러바치고 자기만 쏙 빠져나가는 배신자 포지션이 된 느낌이랄까.


엄마가 주는 안정감, 근원적인 향수, 존재감, 이러한 것들을 감히 누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요지는 엄마라는 포지션이 아닌 엄마가 하는 '역할'의 대용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었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세탁물이 소재에 적합한 방식으로 세탁이 된다든지, 콘센트 구멍 위에 얕게 쌓이는 먼지가 어느 순간 사라진다든지, 도저히 어디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물건을 몇 시간을 걸려서라도 찾아다주는, 서비스인지도 모르고 누리는 그런 서비스가 필요한 것'뿐인' 이들을 종종 볼 때마다 마음이 혼곤하던 것이 얼떨결에 튀어나온 모양이다.


논점을 있는 힘껏 이탈해보자면,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대용'이 될 수는 없다. 무엇의 대신이라는 생각을 마음 속에 한 번 굴려본 순간부터는 절대 그 '대용'에 만족할 수 없게 된다. 실은 그 원본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아니 애당초에 무엇인지도 모르겠더라도 그 순간부터는 항시 그 어렴풋한 원본을 떠올리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대용품을 깎아내리며 살아갈 뿐이다. 요컨대, 꿩 대신에 무엇을 갖다 대더라도 꿩만은 못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아무개를 다른 아무개의 대용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항시 불행하기만 하다. 어휴, 내가 저런 것을. 어휴, 내가 재수가 없어서. 얄팍한 그 속내가 나는 가끔 두렵다. 엄마 대용의 아내라는 나의 말에 '말이 심하네'라고 할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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