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어 에세이] 시월 이십구일

4. 중탕

by 한물

오랜만에 글을 쓴다. '추석 지나고~'라는 관용어구로 미뤄둔 약속들이 도화선에 불 붙인 양 터져대던 지난주였다. 나는 내향형 인간임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왜, 내향형 인간이라는 게 소극적이고 말 못하고, 이런 게 아니라 에너지를 어디서 얻느냐의 문제라지 않는가. 나의 에너지는 100%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에서) 나오는 듯하다. 지난 주 3일 연속 약속, 주말 약속을 소화하며 얼마 안 남은 치약처럼 쪼그라들던 에너지가 이번 주, 3일 동안 약속이 없으니 '글이나 써볼까?' 하는 수준으로 돌아온 것을 보면.


가끔씩 어떤 사람들을 보면 질투다, 동경이다 하는 인간적인 감정을 넘어서 넘실거리는 자연을 마주하는 것만 같은 경외심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저렇게 살지?'라는,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무언가를 맞닥뜨린 그런 느낌. 사람도 매일 만나고, 취미 생활을 하고, 자기 개발은 물론이요, 업무에도 충실하며, 더구나 틈틈이 SNS에 올릴 법한 곳에 놀러다니는 이들을 보다보면 뭐라도 더 해야하나 싶은, 손님을 잔뜩 초대해놓고 잔칫상을 차리는 집주인의 마음이 되어버린다.


왜 어떤 이들의 삶은 더욱 뜨겁게 느껴질까. 음, 부럽지는 않다. 나는 그 뜨거움에 데이고 삶기고 끓여질 것이 눈에 선하니 말이다. 하지만 손이 빨개질 것을 알면서도 눈을 짓이기고 쥐어대는 아이처럼 이따금 '해야 되나?' 하는 마음으로 그 열기에 손을 담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예견된 실패, 일생이 '앗 뜨거!'의 반복이다. 외향성, 업무, 취미, 자기개발 … 따위로 이뤄진 육각형 모양의 풍선을 애써 불다 보면 어느 한 쪽이 볼품없이 퍽, 터져서는 바람이 새어 나가 버린다.


그러니까 나는, 내열 유리가 아닌 것일지도. 삶을 불태울 뜨거운 열기는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적당히 뜨거운 물 위에 떠서는 굳지도, 흘러내리지도 않을 만큼의 은근한 열기를 받아내며 중탕하는 삶이 나의 삶일지도 모른다. 비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라, 좀 괜찮을지도?'하는 마음이다. 무엇 하나 태우지 않고도 온기를 담아낼 수 있다면. 눈에 띄지 않고도, 눈에 띄기엔 너무 약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내일도 부디, 뜨끈한 하루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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