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의 미학

1.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겠다.

by 한물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일단은, 그래. 내가 겉으로 보기엔 썩 모자라지 않다는 점. 되레 이 사회의 특권을 야무지게도 챙겨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밝혀야겠다.


나는 서울 소재 중학교에서 정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3년 차, 이젠 적응을 넘어 조금씩 닳아가는 시기.

남들이 '오' 할 수도 있을 대학교를 나왔다. 군대는 육군 만기전역, 이지만 어디서 육군이라고 떠들지는 않는다. 미군 부대에 얹혀살다 온 사람들이 으레 그렇다.

양친은 건강하시고 직업도 수입도 뚜렷하다. 학대를 받거나 잘못된 훈육을 받은 기억도 없다.

지정 성별도 남성, 성 정체성도 이성애자 남성이다. 비장애인이다. 뚜렷한 신체적 특징도 없지만 그렇다고 약점도 없다.

이렇게 보면 나는 정상성의 화신이다. 부족함 없는 생애를 보낼 모든 환경을 갖추고 태어났다.


장광설로 시작하는 이유는, 지금부터 하는 모든 이야기가 오롯이 내 탓이라는 점을 명명백백히 해두고 싶기 때문이다. 불우한 환경도, 나를 착취하는 못난 부모나 지인도, 심지어 흔히 있을 법한 불운도 없었다. 내가 겪은 모든 재앙은 나의 어리석음이 자아냈다.


나는 그런 내가 무엇보다 소중하다. 다른 존재는 사실 안중에도 없다. 짬이 날 때면 골몰하게 자기 생각만을 한다. 일 없이 배꼽을 긁는 아이처럼 내 실수와 과오를 후벼 파고, 그 냄새를 맡는다. 음미한다. 아, 쓰레기 냄새. 뿌려진 낱알을 향해 쉼 없이 머리를 들이박는, 거의 도리깨질을 해대는 비둘기처럼 나는 걸신들린 듯 맹목적으로 나를 욕한다. 나의 실언을 비웃는다. 분위기가 싸해진 순간에 오갔던 남들의 시선을 떠올리고 들이킨다. 나를 향한 조롱 섞인 눈빛과 날 선 반응을 온몸에 바른다. 그 모든 일이 순전히 등신 같은 나의 탓이라는 걸 깨달으면 짜릿하다. 남을 조소할 때 얻을 수 있는, 남보다 우위에 있다는 그 희열은 나를 조소할 때의 희열에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이제부터 풀어놓을 이야기는 강박이다. 피해의식이다. 뒤틀림이다. 변호이다. 나에 대한 지대한 사랑이다. 지루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열거한 모든 것들이 명쾌한 이유나 계기가 없는 것들이니.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겠다.'


이 선언은 나의 모든 의사와 행동을 결정하는 기저이다. 누군가가 날 좋아해 줄 것이란 생각은 글쎄, 초등학교 때쯤부터는 마음 한 구석에 처박아두었다. 난 여느 동요처럼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님을 진즉에 깨달았으니까.


그래서 미움받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입방아에 오르지 않도록, 누가 설령 내 이야기를 꺼내도 '그냥 괜찮지 않나?' 내지는 '그런 애가 있었나?' 하는 소리가 나오도록. 그 방식은 지극히 단순했다. 남에게 불쾌 자극을 주지 않는 것. 길가의 은행나무나 바닥에 흩뿌려진 전단지처럼, 무정물처럼 남들의 배경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 음악실을 갈 때 친구들의 끄트머리에 섞여 우르르 갈 수 있고, 축구를 하기 위해 편을 가를 때 적당히 8번째쯤에 뽑힐 수 있는 것. 그것이 나의 목표였다.


나는 무색무취의 종업원이 되었다.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꼭 필요한 반응과 표정과 감정을 제공하는 것이 접객의 기본. 나는 기회를 엿보다 틈만 나면 주위의 모두에게 종사한다. 내 의견을 물을 때면 '나도' 좋다고 말하고, 내 생각을 물을 때면 인터넷을 굴러다니는 글에서 본 주장을, 그중에서 비추천보다는 추천이 많았던 주장을 그대로 이야기한다. 이래도 저래도 방법이 없을 땐 와락 웃어버린다. 와학학. 필사적인 아양과 교태를 남들이 다정함과 세심함으로 받아들일 때 (실은 그렇게 말해주는 것뿐이겠지만), 묘한 뿌듯함을 느낀다.


알맹이가 없는 사람이니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리가. 나는 누구와도 두어 시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누구와도 두어 시간 이상 얘기하기 어렵다. 눈치껏 파악한 그 사람의 관심거리, 누구 하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 보편적인 흥밋거리, 최근의 실황을 모두 얘기하면 꼭 두어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조금 친해졌다 싶은 사람과의 시간을 지루한 침묵과 어색한 눈짓으로 망치고 온 나는 한 명의 친구를 잃고, 그 사람을 평생 그리워한다. 반복.


종종 만나고 가끔 박장대소를 나누던 친구와 소원하게 연락을 주고받다 보면, 느껴질 때가 있다. 아, 이제 이 친구는 더는 나를 견디지 못하겠구나. 생일에 적당한 선물을 고르지도, 실없는 농담이나 알맹이 없는 지껄임을 잠자코 듣지도, 우연찮게 생각이 나도 연락을 건네지도 않겠구나. 미움받지 않으려는 나의 모든 선택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향과 철저히 반대로 나를 이끄는 듯하다. 그리고 나는 제 묫자리를 파는 심정으로 언제나 반댓길을 택한다. 미움받지 않아야 하니까.


끊임없이 내려가는 주소록에서 맘 편히 전화할 사람 하나를 찾지 못하는 나를 있는 힘껏 비웃는다. 왜 그래, 네가 바라마지 않던 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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