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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런 Aug 24. 2020

멘탈 관리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길고 긴 우기가 끝나고 이제 볕을 좀 보나 했더니 코로나 2차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되었고 집합과 이동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이 내려졌다. 3개 이하로 오던 안전 안내 문자는 많게는 9개까지 종일 띠링띠링 전달되었다. 어제는 우리 아파트에 방호복을 입고 역학조사를 하러 왔다는 사람들을 보고 나니 긴장감과 두려움이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가족이 새롭게 수정해야 할 생활패턴은 없었다. 마스크는 항상 쓰고 있었으며 부득이하게 병원을 가야 할 때를 빼고는 타 지역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집안 행사나 지인과의 모임은 모두 취소했고, 아이들 역시 놀이터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누린 것이 있다면 4주 정도 부분 개관을 한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골라 나왔다는 것이나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이 등교를 한 것일 텐데 이젠 이마저도 임시휴관 및 온라인으로 바뀌었으니 연초부터 해 오던 대로 똑같이, 집순이 집돌이 생활을 하면 되는 것이다. 코로나가 종식되기 전까지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가 되든 3단계가 되든 나는 변함없이 계속 이 패턴을 유지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2차 유행이 시작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것에 뭔가 못마땅하고 심보가 뒤틀리는 심정이 생겨난다.  


타인들의 부주의로(no mask) 조금이나마 누린 주 1회 등교나 부분 개관 같은 한정된 허용마저 빼앗겨버린 것 같아 화가 나고, 할 수 있는데 내가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외부요인으로 금지되어 나마저 못하게 된 것이 시쳇말로 빡친달까?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지만 상식 선의 이성을 넘어선 자들이 날뛰는 것마저 동일 사회 구성원이란 미명 하에 유기적으로 엮여버리게 되니 치욕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노감을 연료 삼아 정진해야 할 태도란 방역당국의 권고에 협조하고 그간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협조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의 8할이라는 점이 씁쓸하다. 이미 성실히 방역수칙을 지켜왔음에도 신천지, 이태원, 쿠팡, 스타벅스, 사랑제일교회 발 전파로 계속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는데 앞으로 이 지겨운 패턴을 몇 번을 더 두고 봐야 할지 기약이 없으니 말이다.


이런 복잡다단한 감정을 계속 담은 채로 바깥 소식에 열을 내고 있자니 몸에 부담스러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화내고 원망하고 울분을 터트리는 등의 부정적 소용돌이에 휩싸이면 몸이 아파다. 어깨가 딱딱하고 심장이 조이는 것 같다. 머리도 지끈하고 피곤이 몰려오면서 어딘가 털썩 내던지듯 곧바로 눕고 싶어 진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스스로 체험한달까...

이번에도 몸이 경고를 보내준다. 이미 사태는 터졌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 혹은 이외의 일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마음의 엔진을 과열시킨 모양이다. 기계처럼 off 버튼을 누르면 화기가 단번에 꺼지면 좋겠는데 쉽지 않다.


신경을 돌릴 수 있는 것을 단번에 찾을 수 없어 일단 자극하는 것들부터 차단하기로 했다.

코로나 확진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교회 신도가 탈출했다는 안내 문자를 끝으로 확진자 문자는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았다. 신문기사도 뉴스 방송도 일단 꺼버렸다.


사방이 조용해지니 정신 사나움은 덜해졌는데 잡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며 화의 잔불이 되살아나려 한다. 거슬리는 것이 더 있나 살펴보니 마침 욕실 환풍기도 덩달아 덜덜덜 소리를 낸다. '오호~ 너 이 녀석, 불만이 많은 게로구나, 혼쭐을 내주마'하며 드라이버를 들고 분리했다. 안을 봤더니 몇 달 새 끼어든 먼지가 촘촘히 들어서 있다. 면봉과 젓가락, 물티슈를 이용해 팬 사이사이를 세심하게 닦아주었다. 굴곡진 곳이 많아 쉽지 않았지만 묵은 때를 벗겨내는 쾌감이 있어 입을 꾹 다물고 오직 팬 사이사이만을 살피며 꽤 오래 집중하였다. 작업을 끝내 놓고 다시 돌려본 환풍기는 소음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마음의 소리도 처음과는 달라졌다.  


그럼에도 평안을 논하기엔 미진한 구석이 있어 운동화를 신고 인적이 드문 동산으로 향했다. 방구석이 아닌, 보다 트인 곳에서 마음이나 달래 봐야겠다 싶었다. 대나무 숲이라도 있으면 야, 이 XXX야 화통을 터트릴 텐데 그럴 수 없는 환경이니 마구 뛰는 것으로 발산시켰다.

평화로울 때는 걷기만 해도 행복해서 이 느낌 그대로 음미하고자 뛸 생각을 안 했는데 속 시끄러우니 도리어 잔잔하게 걷는 것이 힘들었다. 숨이 차면 속도는 줄었으나 땅을 딛는 강도나 휘젓는 팔의 각도가 거친 것은 마찬가지였다.

 

서너 바퀴 소처럼 휘저었다. 조금 더 멋지게 표현하고 싶으나 분노를 심지삼아 정렬되지 않는 기운으로 짓밟는 힘을 실었으니  떼처럼 뛰었다는 게 맞는 듯하다. 

체력이 고갈되 거친 숨이 푸푸 올라오지만 마음만은 꽤나 개운했다. 분노할 때의 고통이 들숨과 날숨에 묻혀 날아간 듯했다.   

멘탈 관리는 피지컬로 하는 거라던 온라인 댓글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나 보다.

역시나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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