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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런 Aug 31. 2020

우리를 감싸는 것들

불안이 엄습해 올 때

늪으로


장마 마저 50여 일째,  이른 아침 걷기도 힘들어져 아예 집안에 묶이게 되었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흐린 날이 교차 반복되어 햇빛을  쉽게 볼 수 없었고, 코로나 확진자 안내나 호우경보, 산사태, 침수 피해를 알리는 재난문자 폭탄 속에서 건조기와 에어컨, 제습기에 의지하여 습기 속을 헤쳐왔다. 세상 소식이라도 들을라치면 정치, 경제, 사회 전방에 걸친 파열음으로 몹시 불편해진다. 그것마저 끄고 고층 베란다에서 장마 특유의 눅눅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노아의 방주를 탄 채 둥둥 떠 있는 느낌이다. 운 좋게 안전한 곳에 앉아 신의 채찍질을 피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지긋지긋한 고립의 시간과 알 수 없는 내일에 대한 불안과 근심이 문득 올라온다. 그러면 나의 방주는 넘실대는 움직임을 더 격하게 만들어 정신없이 흔들어 놓는다. 속절없이  흔들리다 보면 푹 꺼지듯 침울의 늪에 잠겨간다. 부지불식간에 젖어버려서 무기력하게 가라앉는다. 그럴 때면 또 회색 구름에 휩싸였구나 하고 상태를 짐작한다.



회색 구름, 나의 낙원도 비는 오는 것이었나-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갔더랬다. 다른 여행지도 얼마든지 많은데 굳이 없는 돈을 쪼개고 어떻게든 일정을 늘려 하와이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어렸을 때부터 하와이는 어딜 가나 한 번쯤은 만나게 되는 이미지였다. 훌라춤을 추는 원주민, 파도 소리와 장단이 어우러지는 다정한 악기 소리, 야자수 아래 놓인 칵테일 잔 너머로 펼쳐진 하늘과 바다, 혹은 일몰.

내가 사는 세상이 화염병 터지는 시위가 계속되어도, 노동자가 절규하며 고공시위를 하고 있어도, 서민들이 금을 모아 나라 빚을 갚는데도 하와이는 항상 느슨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아비규환의 세상과 동떨어진 낙원에서는 이럴 수밖에 없다는 듯 흐느적거렸다. 그 리듬은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언젠가 꼭 저 비상구 속으로 헤엄쳐 가보리라 다짐했던 곳이었다.  

일본을 경유하여 하와이행 비행기에 오르자 그곳으로 향하는 거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느끼며 나는 기절할 듯 흥분했다. 어느 관광지를 가고, 어떤 체험을 할지 기대하는 것보다 그곳의 공기와 온기, 리듬을 맡아보게 되는 것이 설레었다.


기장의 착륙 전 안내를 듣고 창밖으로 나의 낙원이 얼마나 가까워졌나 가늠할 때였다. 처음 보는 기이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끝없이 청명한 하늘과 반짝이는 새파란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 보이는데 섬 안의 도시만이 티끌을 가득 끌어안은 듯 먹구름을 머리 위에 이고 있었다. 공항에 발을 딛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가 오고 있었고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다.

분명 상공에서 내 이 두 눈으로 거대한 하늘과 바다가 작렬하듯 쨍쨍한 청색 빛을 내뿜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것의 수만 분의 일도 안 되는 회색 덩어리가 시가지의 모든 것을 어둡고 축축한 것으로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아.. 나의 낙원도 비는 오는 것이었나- 하와이는 비현실적이어야 하는데.. 근심 걱정 따위는 지워져야 하는데...  야자수와 우쿨 룰레는 어디 가고 수집하고 싶지 않은 데이터가 떡하니 버티고 있단 말이냐...


낙원에 인도되자마자 생존 비상등이 반짝 켜졌다. 우의나 우산을 지금 사놔야 하는 건지,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렌터카는 비를 안 맞고 가서 빌릴 수 있을지  우왕좌왕하면서 막막해졌다. 훌라춤 대신 생쥐 꼴로 젖은 몸을 부르르 떨어야 하는 처지를 생각하니 기대에 부풀었던 마음도 물 뿌린 모닥불 마냥 피식 연기를 내며 꺼져버렸다. 내가 보고 싶었던, 느끼고 말리라 다짐했던 낙원은 절대 이런 게 아니었다. 어떤 달력이나 잡지도 축축하게 양말이 젖어드는 하와이에 대해선 보여주지 않았고, 설사 그런 장면이 있었다 하더라도 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약간의 골치를 앓고 무거운 마음으로 이동하는 사이, 다행히도 먹구름은 어느새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 자리에는 비행기 안에서 보았던 하늘이 다시 채워졌다. 휘어진 도로를 지날 때 스쳤던 해변도 여전히 잔잔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난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은 것 마냥 반가워졌다. 그리곤 좀전의 근심과 실망이 무색하게 명랑해지기 시작했다.  감정의 낙차가 너무 컸었던지 옆지기는 적응하기 어려워했고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고서야 나의 상태가 번뜩 인식되기 시작했다. 소나기가 조금 길게 지나갔을 뿐인데 목전의 현상만 보고 감정이 크게 동요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부끄러워졌다.

한편으로는 한낱 미물이 울퉁불퉁 까불어대는 동안에도 햇빛과 하늘과 바다로 이루어진 나의 낙원은 덤덤히 그 자리에 앉아 여전히 날 감싸고 있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덜 고독해도 되겠다 싶은 안도감이 들었다. 그것들은 변하지 않는 것, 지나가지 않는 것, 항구적인 것이어서 가려지더라도 보고자 하면 언제가 됐든 볼 수 있으므로 불안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러자 딱딱하게 굳어버린 모든 긴장이 탁 풀렸다. 

결국 날 괴롭혔다 회복시킨 것은 회색 비구름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감정이었다.


다시 낙원


어른의 삶을 시작하고 보니 세상일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혹감을 느끼고, 가늠되지 않는 미래가 두려워 내 마음의 배가 출렁일 때면 그날의 회색 구름을 생각한다. 지나갈 것이므로, 사라질 것이므로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중요한 것들은 변함없이 나를 감싸고 있다고 말이다. 물론 그 생각만으로 드라마틱한 해법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쓰러지지 않고 견디는 뿌리 같은 힘이 있어 덜 울게 하고, 덜 화나게 한다.


오랜만에 소환된 회색 구름을 침울해진 내 마음의 지도에서 멀리멀리 후-불어내었다. 그러곤 그 자리에 눈부시게 쨍쨍하던 하늘과 바다를 끼워본다. 그러면 침울의 늪에 잠겨있다가도  비실비실 농 한 마디 할 줄 아는 여유가 비집고 들어온다.

건너편 아파트의 불빛들에게 '당신도 나처럼 방주를 탔군요-'하고 들리지도 않고 전해지지도 않을 한 마디를 읊조렸다. '지금은 컴컴한 구름에 가려 보이진 않겠지만, 우리를 감싸는 것들이 있어요. 당신도 잘 알고 있어 그렇게 빛을 반짝이며 이 밤을 버티고 있는 거지요?' 또다시 중얼거린다.

그러고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저쪽도 나의 불빛을 눈에 담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행여나 침울의 늪이 남긴 빛느끼게 되면 저쪽도 가라앉을까 봐 그대로 둘 순 없겠다. 부랴부랴 훌라춤을 추며 웃고 있는 원주민, 파도 소리와 장단이 어우러지는 우쿨룰레 소리, 큼직한 코코넛이 달린 야자수도 소환해 스펙트럼을 넓혀본다. 그 속의 칵테일 잔을 한 손으로 들고 여전히 꺼지지 않는 건너편 불빛을 향해 잔을 부딪히며 낙원을 공유한다.

각자의 리듬에 맞춰, 나의 낙원에서는 이럴 수밖에 없다는 듯 느슨한 춤을 추며 평화롭게 여명을 기다릴 수도록 말이다.




20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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