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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런 Sep 13. 2020

집에만 있어도 매일 바쁘다

본심 들어주기


 백 신분을  노출시킬 마다 심심찮게 듣는 질문은 집에서 뭐하냐? 라든가 집에서 노니 어때요? 라든가 심심하지 않아요? 답답하지 않아요? 우울하지 않아요? 뭐라도 배우지 그래요? 같은 것들이었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COVID시절을 함께 통과하고 있음에도 용히  주변을 맴도는 생활을 긍휼히 여기는듯한 저 질문들은 끝날 듯 말 듯 엄띄엄 내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끊임없이 분비하고 배설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작업이란 것이 있으며, 현재 주부와 엄마란 타이틀로 그 작업을 종일 도맡아 하고 있다는 걸 알 텐데, 그 와중에도 훗날을 도모하고 있음을 알 텐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엔 그들이 생산과 재생산의 이분법으로 구분 짓는 산업 시대노동 잣대를 가지고 있나 의심 해봤다. 그래서 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가사노동이돌봄 노동을 하대함으로써 나의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오롯이 빨아들이는 일련의 일들 아무것도 아닌 것 마냥 무시하는 건가 가 날 때도 있었다. 고되고 바쁜 업무와 일과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말해주는 명함이 지금의 나에겐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씻기고, 가르치고, 해 먹이고, 청소하고, 세탁하고, 장을 봐오고, 재테크에 촉을 올리는 스케줄을 일일이 말하는 것도 모자라, '세탁기만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에요. 짙은 옷과 연한 옷, 재질별로 구분해서 애벌빨래를 하거나 손세탁을 하고, 친환경 세제를 녹여 세탁기를 돌린 뒤 일일이 널었다 빳빳하게 마르면 곱게 개어 하나하나 제자리에 정돈을 한 뒤, 다림질을 다 해놓고 말끔히 치워놓아야 수많은 과제 중 하나가 끝나는 거라고요.'라고 그림자 노동의 전모를 상세히 설명해줘야 하는 것인가 심경이 복잡해졌다.


나의 능력이 사회에서 쓰이지 못하고 있는 것 안타까워하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고맙게도 주관적인 애정을 표현하는 이들이 그러한 그럴 땐 차분히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과 이 좁은 땅에 널린 숱한 인재들을 상기시키, 이 몸은 한낱 필부필부에 지나지 않음을 내 입으로 얘기다. 동시에 현재의 백수 신분은 내 맘같이 굴러가 주기는커녕 갈수록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일과 가정의 양립' 앞 처절 패배를 인정하고서야 렵게 결정한 선택이었음을 애써 설명하기도 하였다.


혹은 나의 성향을 외향적으로 기억한 건 아닌가 싶어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외향성과 내향성의 비율을 조절하는 사회인의 숙명을 재차 명하기도 했다. 일터와 가정 모두에서 에너지를 쪽쪽 빨리는 이 땅의 워킹맘들이 겪는 흔하디 흔한 조울증의 전조였을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든 사회생활을 병행하려 선택한 노선이었으므로 틀린 말도 아닐 터였다.


가장 근본적인 의문 왜 나의 스케줄과 계획을 보고하고 소명해야 하는지, 상대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지였다. 취직은 했는지, 아파트는 샀는지 보다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지 라를 좋아하는지부터 알고 난 뒤에 다가오는 것이 매끄러운 순차일 텐데 다짜고짜 스펙만 확인하는 한국인 특유의 오지랖은 매번 멀고 먼 우리의 거리만 재확인시켜주었다. 예의 없는 외계인에게 호혜를 베풀 은혜로움이 내겐 부족한데 말이다.


정말이지 너무나 궁금하여 위의 몇 가지 측면들을 열한 뒤 상대에게 어떤 입장에서 판단한 건지 물어보면 되돌아오는 답변 중 가장 많은 것 '그냥.. 그럴 것 같아서...'였다.

그냥 그럴 것 같아서라니?!  내가 그렇게 뒷목을 잡아가며 절절히 설명해가며 택지를 콕 짚는데 '이도 저도 아니지만 그냥 그럴 것 같아서'라고 말을 하다니- 그 어떤 분석도 사전에 차단하고야 마는 '그냥'이란 무책임한 얼버무림 앞에서 나는 번번이 힘이 빠져 보릿자루 마냥 철퍼덕 무너지곤 했다. 




따져 물을 전투력마저 상실한 뒤 어색하게 끝을 맺거나 화제를 돌리는 식으로 대화가 끝나기를 거듭하던 어느 날, 이번엔 B가 '넌 뭘 하며 하루를 보내니?'라며 작은 공을 쏘아 올렸다.

그냥 그럴 것 같다는 답변을 또 들을 것 같다는 섣부른 판단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틈새시간을 확보하기 힘들거나 수시로 방해받고 있어 매일 시간을 아쉬워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에 대한 배신감이 화학반응을 했던 싶다. 나는 B가 쏘아 올린 공을 향해 바주카포를 날리고 말았다. 당황한 B는 그런 말이 아니라고만 되풀이하다가 '네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 실은 내가 그래서 그래.'란 한 마디를 겨우 내뱉은 뒤에야 날 길들일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지만, 그것을 쓰고도 들킬까 봐 '아는 사람 얘긴데 말이야'로 자신의 얘기를 꺼낸다지만 내게 대화를 건네면서 굳이 나를 방패로 써서 들어올 필요가 있었을까? 

내 근황을 물음으로써 공감의 돌다리를 두드린 뒤 본인의 이야기를 할 참이었는데 내가 성질 급하고 덕이 없어 댐부터 쌓아 막아버렸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당신은 범인(人)이어도 되고 난 이면까지 알아채는 현자여야 하는 룰은 과연 합리적인가?

집에서 뭐하냐? 가 아닌 '나도 집에서 뭔가를 하고 싶은데 뭘 할지 모르겠어.' 혹은 '네 근황이 궁금하다'로 '집에서 노니 어때요?'가 아닌 '사표를 냈거나 내고 싶은데 그래도 살만할까요?, '심심하지 않아요? 답답하지 않아요? 우울하지 않아요?'가 아닌 '난 집에 있으니 심심하고 답답하고 우울해요.'로, '뭐라도 배우지 그래요?'가 아닌  '나는 한순간도 노오력하지 않고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 같아 불안해요.'로 담백하게 직진했더라면 화살의 방향을 내게 돌려 고민하지않았을 것 아닌가..





이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뭐하냐는 질문을 재해석하고 B를 다시 직시하니, 날 선 태도는 누그러지고 되려 약간의 연민을 담아 입과 귀를 열게 되었다.

B가 처한 직업적 상황, 고민의 갈래, 개인적 약점과 방해물, 불안감과 부족한 용기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역시나 백수 주제에 실실거리는 나를 보며 자신을 반추했던 것이구나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내게 뭐하냐고 물었던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건가, 하고 싶은데 어찌 시작할지 몰라 망설이다 아무 말이나 내뱉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뚜벅뚜벅 걷던 길 한가운데 서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던 게로구나, 그러다 다른 길에 서있는 나에게 똑똑 노크를 한 것이었.. 슬금슬금 관심법이 잔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없이 내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가사노동 방어적으로 하며 분통을 터트릴 필요가 없어다. 그저 내 앞에서 자기 자신을 말로써 풀어내며 다시금 정리수 있도록 가만히 들어주기만 하면 이야기의 결론은 상대가 알아서 도출다. 거기에 추임새로 화답하고 나면 나는 나대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아, 우리는 어떻게든 묵묵히 살아가고 있구나 끄덕이며 삶을 공유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후로 집에서 뭐하느냐는 질문이 나오면  '집에만 있어도 바빠, 어때?' 하며 반사경을 조준하 상대의 현재를 훑으러 잠수를 시작한다.

간혹 상대가 마음의 여유가 있어 뭘 하느라 바쁘냐고 물으면 '그냥 바쁜 거 쓰느라 바쁘다'라고 얼버무리고 만다. 쪼잔하게 되받아치는 거냐 따진다면 순도 99.9% 찌질이라 어쩔 수 없음을 쿨하게 인정하겠다.

단, 부가적인 설명을 보태자-

반경 1km 안에서만 맴돈다 해도 감탄할 것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팡팡 피어나고 있어 그것에 반응하려니 바쁘고 바쁘다. 라진 내 인생의 노선과 일상 루틴이 지금 이 순간에도 유유히 삶의 족적을 남기고 있으며 그 덕에 배경이 달라져도 내가 잡은 운전대는 또 다른 노선에 합류하 있을, 희로애락이 넘치는 롤러코스트는 어김없이 작동하고 있음을, 길 위의 스승들은 여전히 나를 자극하고 있음을 매일같이 닫는 중이다. 리고 지금처럼 나 자신과 주변을 찬찬히 돌아볼 여유가 다시 오리란 기약이 없을 제한적 시간이기에 더 소중하다. 때문에 허공으로 날아가버릴 나의 시선과 감정들을 미천한 솜씨로나마 글로 남기고 있으니 '그냥'이란  스턴 발동 앞에 마비되어 버릴지, 읽고서 날 이해할지는 그대의 선택에 맡기겠노라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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