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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런 Aug 24. 2020

요리하는 마음

남편을 위한 리추얼

6시 알람 소리를 끄고 머리를 단정히 묶는다. 물 한 컵을 따뜻하게 데워 몇 모금 나눠 마시며 차려낼 밥상 메뉴를 궁리한다. 대개 아침으로 먹을 것은 유순하게 스며들 수 있는 국물류를  끓여낼 것이므로 메뉴는 한정적이다. 하지만 최근의 것과 겹치지 않게 하려니 매번 수이 결정되지 않는다.


오늘은 모처럼 장터국밥을 흉내 내어 식탁에 내놓았다. 홍삼차와 비타민, 유산균, 작은 방울토마토 몇 알도 김치 옆에 나란히 모여있다. 이것은 가족을 떠올리며 모진 풍파를 견디어낼 내 동반자에 대한 안쓰러움의 더미들이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국의 온기가 오늘은 덜 마음 아프도록 쓰다듬어 주면 좋겠고, 캡슐 밖으로 퍼지는 영양분이 턱과 가슴과 허리를 늠름하게 곧추세워주면 좋겠다. 그렇게 좋아하는 방울토마토를 머금은 입꼬리가 소소한 기쁨의 수치까지 올려주길 바란다. 이 모든 기도는 그가 떠난 자리를 행주로 닦아내며 마무리된다.


저녁이 되면 내 기도가 제대로 먹혔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게 될 터이다.

그는 밖에서의 일을 좀체 말하지 않는 타입이지만 눈빛과 시선, 표정과 말투, 어깨 높이와 발걸음의 움직임으로 가늠할 수 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다. 좋을 때 함께 기뻐하거나, 우울해할 땐 평정을 가장하며 곁을 맴돌거나, 감정의 간격을 채워줄 한 그릇 요리를 내놓는 일이다.

저녁의 요리는 요리 솜씨와는 별개로 더더욱 정성이 들어간다. 축복은 끝없이 오래 가게 빌며 고기를 썰고, 비극은 새옹지마로 흘러 가게 빌며 양파를 썰고, 고뇌를 떨치고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빌며 양념을 뿌려 바친다.


원대로 이루어질지 모를 일이나 매일매일 올리는 이 무모한 기도들은 그의 영혼에게 바치는 나의 염원이자 사부곡이다.  동심원을 그리며 뭉게뭉게 퍼져 그를 포근하게 덮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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