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는 나무가 많고 작은 공원과 숲이 옹기종기 잘 조성되어 있어 반려견 외에도 고양이, 까치, 비둘기, 각종 이름 모를 새들, 때에 따라 청설모까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종이 다양함에도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바로 인간을 소 닭 보듯 한다는 점이다.
불러도 들은 척하지 않고, 먹을 건 거기 두고 가라는 식이다. 귀찮게 군다 싶으면 퇴짜 놓듯 방향을 틀어 지나가고, 다시 자리 잡은 곳에 떡하니 배를 깔고 누워 무릉도원이 여기로세 충만함에 젖어 있는 것이다. 몹쓸 기억이 있어 지나치게 경계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목적을 가지고 과한 아양을 떨지도 않고, 그저 '네 갈 길 가라, 내 갈 길 갈게' 하는 쿨하고 무심한 태도가 몸에 배어있다.
공생관계를 유지시키는 이토록 안전하고 아름다운 거리라니!!
처음부터 얘들의 태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근거 없이 불쌍해했다가 여러 번 무안당해보니 나의 착각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론 도시의 길짐승들에 대한 나의 편견이 튀어나올 때면 섣부른 판단과 개입을 자제하고 그들의 태도를 수용하기로 했다.
그들이 굶주린다는 착각과는 반대로 좀 전에 통통한 지렁이를 여러 마리 해치웠을지도 모른다는 것, 덩치 작은놈을 쫓는 놈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작은놈이 큰 놈의 영역을 침범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것, 산책로에 나와있는 것은 사람에게 구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볕이 좋아서인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산책로 언저리에서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도 감탄하지 않고 지나쳐 왔다. 젖을 빠는 작고 여린 새끼들을 보고 싶어 걸음을 늦추긴 했지만 눈을 지그시 감은 어미 고양이가 경계하지 않도록 흘깃흘깃 눈동자만 굴렸다. 제대로 보기 힘든 것은 안타까우나 어미가 안전을 확신하면 나중에 또다시 새끼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말이다.
고양이들을 지나치고선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수유가 너무 힘들어 엉엉 울며 젖을 물리던 기억, 어린 시절 젖 먹던 강아지가 너무 예뻐 만져보려다 어미에게 물릴 뻔했던 기억, 아들이 어렸을 때 본인의 애착 인형을 달래려 제 쭈쭈를 내어주던 갖은 기억들..
별별 희로애락을 다 겪으며 지나왔구나 흐뭇하게 웃고 보니 어느새 숲 산책로 끝 도로변까지 나왔다. 원래는 도로변을 따라 집으로 향할 계획이었으나 멀직이에 서나마 야옹 모자 모녀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다.
고양이들이 있던 자리에 웬 등산복 차림의 어르신이 서 계시고 다른 두 분은 그 자리에서 나오는 길이다. 웅얼웅얼 나누는 얘기들을 종합해보자니 젖 먹이느라 힘들 어미에게 보양식 삼아 먹을 것을 주었으나 먹지는 않고 새끼들을 차례로 물고 사라져 버린 모양이다.
아이고 어머니드을~이 동네 짐승들은 그거 안 먹힌다고요~원치 않는 배려는 친절이 아니라 침범이라고요오~~ 갈빗살 먹으려고 했는데 숟가락 위에 삼겹살 올려주지 마시라고요오~~~
격해진 말들로 포효할까 하다 이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분들에 대한 나의 편견이 튀어나올 때면 섣부른 판단과 개입하기를 자제하며 그들의 태도를 수용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해서.... 는 아니고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가 있었듯 그들도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이니까. 자리를 뜨시면서 '괜한 오지랖을 부려 고양이에게 폐를 끼쳤다' 참회를 하시니까. 자정능력이 있는 어르신들을 계몽할 권리가 내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