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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Dec 10. 2022

[파리에서 사브레 쇼콜라 먹을 날을 기다리며]

나에겐 10년째 나와 같이 일하는 애증의 상사가 있다. 딱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뭐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어린 나에게, “맛있는 빵 많이 사 줄게!” 라는 꼬임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고, 그저 재미있는 일을, 내 손으로 만드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나는 덜컥 ‘그’의 사업계획서의 창업멤버로 들어갔다. 10년간 함께 만든 회사엔 우여곡절이 참 많았고, 회사가 다른 곳에 인수된 후엔, 우리를 인수한 모회사에까지 같이 오게 되었다. 모회사에 와서도 흘러 흘러 여러 부서들을 거쳤는데, 하필 요즘 우리 부서에 일이 많은데 내가 확진으로 격리를 당해버렸다. 친구들에게 “나 양성이야” 라고 하면, “그래 너 요즘 너무 바빴는데 좀 쉬어라” 라고 위로해주곤 하지만 실상은 “띠링”, “띠링”, 계속해서 회사 메신저와 메일이 울리는 일주일을 보내고 있다.


격리 5일째, 다행스럽게도 인후통 외에 큰 증상은 없었고, 쉬었던 목도 많이 돌아왔다. 증상은 코막힘쪽으로 이동했는데 제일 걱정했던 ‘미각 상실’까지는 아직 아니고, 미각이 약간 후퇴했지만 계속 이것저것 맛보며 미각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집 6살 언니도 같이 확진이 되었는데, 슈퍼면역자 남편이 격리자 둘을 두고 출근하게 되었다. 그래도 남편이 집에서 같이 있었을 땐 남편이 딸의 시중도 전담마크하고, 맛있는 밥도 해 줬는데 겨우 몇 시간 자리를 비운 오전이 왜 이렇게 크게 느껴진 건지.. 몸이 더 아픈 느낌이었다.


“너 몸은 괜찮아?”

라고 시작한 ‘그(=상사)’의 카톡은,

첫 두 줄을 제외하고는 온통 해야 할 업무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아니 나 안 괜찮아”

라고 썼는데도

“어제 거의 밤샘”

이라고 답을 하며 다시 온통 해야 할 업무들로 카톡이 한 바닥을 넘어갔다.

“일 많은 건 알겠는데 걱정도 안해주고 서럽네..”

라고 중간에 끊으니 그제서야

“겁나 걱정 중이야. 그래서 너한테 요청 안하고 웬만한 건 내가 거의 다 하고 있어. 진짜 필요한 거 말고”


점심이라도 맛있는 걸로 먹을 걸, 괜히 더 서러워졌다. (점심으로는 엄마의 멍게비빔밥을 또.. 먹었고, 야채 듬뿍! 들기름 많이!) 이렇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6살 언니가 낮잠 자는 동안 그녀의 쿠키박스를 열어버렸다. 그녀의 취향으로 채워진 쿠키박스에는 사브레 로즈, 튀일 노아제트, 튀일 피스타슈가 있었는데 그 옆에 제일 빛나는 모습으로 나를 기다린 ‘사브레 쇼콜라’를 집어 들었다. 4개밖에 안 남아 있어서 그녀에게 미안했지만 ‘또 사 주면 되잖아?’라고 생각하며 콜드브루와 함께 세팅을 했다.


촉촉한 초코칩이 들어간 부드러운 사브레는 역시 내 마음을 녹여주기에 최고의 선택이었다. 부드러운 식감 사이사이 소금의 짠 맛이 달콤한 초코맛을 더욱 풍부하게 해 주었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건너온 버터와 초콜렛은 참을 수 없지. 한 조각 먹고, 커피 한 입, 한 조각 먹고, 커피 한 입. ‘음~ 그래 아직 내 미각은 살아 있어.’ 위안을 삼으며 또 한 입, 아끼고 또 아껴 먹었다.


이 끔찍한 지옥은 언제 끝이 날까? (지옥 = 일, 코로나 너네 둘 다 해당임)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이 맛있는 쿠키, 이번 주 일요일까지만 버티면 방구석미식여행도 끝낼 수 있고, 또 비행기 타고 파리 갈 날도 곧 오겠지? 일단 다음 주 출근하면 애증의 상사부터 째려봐줘야겠다. 일 시키기 전에 맛있는 빵부터 내 놓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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