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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Dec 08. 2022

[어젯밤 장보고 새벽에 만난 오늘의 요거트]

드디어 나에게도 올 것이 왔다. 오미크론은 지나쳐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내 순서가 안 왔을 뿐’이라는 문장을 떠도는 SNS에서 보고도 그냥 웃고 지나쳐서였을까. 목감기이길 바랐던 나의 목 아픔은 결국 양성(positive) 문자로 내 문을 두드렸다. 분명 자가키트로는 며칠 내내 음성이었는데, 목감기약을 처방받으러 간 이비인후과에서는 신속항원검사를 먼저 해야 한다고 했다. 몇 분 뒤, 키트에 그어져 있는 한 줄만 보고 ‘아 목감기 약 받겠구나’ 했던 나의 눈 앞에 희미한 두 번째 줄을 들이밀었던 의사 선생님은 pcr진료소견서를 써 주셨다. 잠은 잘 잤지만 새벽 내내 내가 양성인지 음성인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꿈을 몇 번이고 꾸다가, 결국 “너 확진자 맞아”라는 문자를 받고, 내 항체의 파워는 여기까지였구나 싶었다.


목이 아파서 부드러운 빵을 먹었고, 또 빨리 낫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빵을 먹었는데, 그런 나를 아는 남편도 “밥 좀 먹어야 겠어.” 라며 약간의 잔소리를 보탰다. “아냐, 나 빵 먹을래.” “안돼. 밥 먹어.” 라며 차려준 저녁밥이 맛있긴 했다. (어제 저녁 메뉴는 남편표 영혼의 매콤한 닭 간장 조림이었다..) “오빠, 그래도 나 아침에는 밥 말고 딴 거 먹으면 안 될까?” 라며 하루 중 한 끼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겠다고 확보해 놓고, 냉동에 아껴둔 바스크치즈케이크가 떠올랐지만 “오빠 바스크치즈케이..”까지만 말했는데 남편이 단호한 눈으로 쳐다봐서 “그럼 나 요거트랑 그래놀라 먹을래.. 그건 몸에 좋잖아!”라고 말하고 극적 합의를 이뤄냈다.


보라색 어플을 켜고 열심히 찾았다. 내가 원래 먹던 요거트랑, 내가 좋아하던 그래놀라, 그리고 과일, 가족들의 간식, 콜드브루 등을 담으니 금방 장바구니가 무거워졌고, 그 중 하나라도 품절이 걸릴 새라 바로 결제했다. 이 시국에 택배나 새벽배송이 없었으면 나 같이 먹을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끔찍하고 또 끔찍한 격리기간이었을 것이다. 


기다리던 아침, “주문하신 신선한 상품을 요청하신 문 앞에 안전하게 배송 완료”하였다는 반가운 메시지를 받고 부스럭부스럭 잠에서 깨어났다. 호두, 아몬드, 캐슈넛이 큼지막하게 들어 있고, 바삭하고 달콤한 애플칩으로 입맛을 살리는 그래놀라. 건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놀라에 있는 건 크랜베리만큼은 꼭꼭 씹어 먹곤 한다. 버터와 꿀에 버무려 구워냈으니 맛이 없을 수 없는 그래놀라를 요거트에 듬뿍 얹어 한 스푼 한 스푼 먹었다. 오도독 씹히면서도 달콤한 맛이 너무 좋아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 그릇을 비웠다. (한 그릇을 비웠다고 하니 마치 국밥 한 그릇 한 것 같지만, 나에게는 세상 맛있는 요거트 한 그릇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인후통 말고는 다른 증상이 없다. 제일 무서웠던 건 ‘미각 상실’이었는데, 어젯밤 제로콜라를 먹고 쓴 맛 밖에 느껴지지 않아 절망의 문턱 앞 까지 갔었지만, 오늘의 그래놀라와 요거트는 그 맛이 그대로 느껴져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주말까지 잘 버텨보자! 예약에 성공한 화이트데이 에디션들도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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