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키딩], 정용준
_아무리 생각해도 고를 수 없었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완전한 무(無), 다시 말해 '존재하지 않음'인데 두 가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니. 너무 가혹한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끝없는 고통으로 이어진 현실, 끝없는 행복으로 가득한 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소?"(p.46)
작가에게도 고르기 어려운 선택지였을까. <저스트 키딩>은 어딘가를 서성이는 이야기다. 꿈과 현실, 환상과 실재, 농담과 진담 그리고 '나'와 '거울 속에 비친 나' 사이의 어디쯤을 헤매는 이야기다.
_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가운데 먼동이 희붐하게 밝아오는 늦겨울, 모두가 느리게 생각하고 느리게 말하고 느리게 움직이는 풍경을 담은 수묵화를 들여다보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느리게 책장을 넘겼다. 선명하지 않은 테두리를 두른 채 두루뭉술하게 움직이는 무채색의 인물들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끝없는 고통으로 이어진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이 갈망을 드러내는 것조차 주저하는 이들. 차라리 "끝없는 행복으로 가득한 꿈"을 선택하고 싶지만 그것이 한낱 부질없는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들. 그러니까 현실과 꿈, 고통과 행복은 결국 한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허망함에 빠져 있는 이들이 어찌 익숙하지 않을 수 있을까. "터널을 통과할 때 차창에 반사된 공허한 내 얼굴이 보이면 고개를" 반사적으로 돌리고만 싶은 내 모습이 그들에게서 흐릿하게 겹쳐 보였다.
"나는 너를 끝내 이해하지 못하겠지. 이해할 수 없으면서 이해할 수 없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겠지. 생각을 멈추고 싶지만 그럴 생각이 없을 테니 나는 평생 질질 끌려다니게 될 거야.(...)이 생각을 나에게서 떼어놓을 수만 있다면, 이 생각을 버릴 수만 있다면, 생각이 팔과 다리 같은 거였다면, 미련 없이 뚝뚝 잘라냈을 거야."(p.81)
"나는 몰랐어요. 사람은 어떤 순간에도 나쁜 것을 찾아낸다는 것을. 아무리 좋아도 지겨워진다는 것을. 좋은 것이 싫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p.47)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거 아닙니까. 후회와 어리석음은 인간의 영원한 양식이니까요."(p.51)
"소설을 쓰기 어려운 게 바로 그거야. 아무리 노력해도 괴상한 삶을 따라잡을 수가 없거든. 그 어떤 상상을 해도 현실은 그것보다 끔찍하니까."(p.203)
그런데 신기했다. "후회와 어리석음"을 "영원한 양식"으로 삼아 견디듯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속 인물들의 뒤를 따르고 곁을 서성였을 뿐인데 일상에 부대끼며 복작이던 마음이 서서히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어느새 나는 그들이 되어 있었다. "오케이 오케이"를 외치며 손뼉을 두 번 치는 세신사에게 편안히 몸을 내맡긴 소년이, 바닷가 낡은 펜션에서 사랑하는 영혼과 함께 빵과 커피를 먹는 손님이, 세상의 모든 바다를 찾아다니는 트럭에 올라탄 소산이, "찬란한 햇빛 사이로 소리도 없이 수수수 내리는 눈. 옥수수 가루처럼 곱고 가벼운" "하얗고 투명한" 눈으로 뒤덮인 "겨울 산" 속에서 봄과 엄마와 이야기 노인을 기다리는 삼형제가 되어, 느리게 생각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와 닮은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꿈이 아닌 삶을 갈망하고 배가 고프고 먼 바다를 희망하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나쁜 생각하지 않고 혹시 모르니 마지막일지 모르는 인사를 건네고 내 속의 또다른 나를 잊지 않고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희미하게 들리는 노래를 듣기 좋아하는 삶, 돌고 돌아 결국 삶을 담은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_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내 선택은 이렇다. '다만'이라는 전제를 내걸 수 있다면 말이다. '다만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내가 영원히 인식할 수 없다'는 조건을 내걸 수 있다면, "끝없는 행복으로 가득한 꿈"을 나는 선택하고 싶다. 삶의 고통과 고통의 의미를 찬송(?)하는 수많은 아포리즘이 진실 중의 진실이라 할지라도 고통을 겪는 일은 너무 슬프고 참담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