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디의 노블 테라피 Dec 11. 2023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는...

<겨울을 지나가다>, 조해진

_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공유하는 듯하지만 실은 철저히 개인만의 것인 시간에 대해서 생각했다. 시간은 무엇일까. 누군가가 살아보고, 살아내고, 때론 살아진 시간은 무엇일까. 그렇게 안간힘의 형태로 누군가에게 속해 있다가 어느 때가 되어 풀려나는 시간은 어떻게 되는 걸까.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고 또다른 누군가에게 남는 시간은 결국 어디로 가는 걸까. 


"엄마의 일부가 묻혔다.

칠십일 년 동안 엄마의 몸 안에 축적된 시간과 지상에는 더 이상 흔적을 남기지 못할 미래의 시간까지 함께 묻혔다. 엄마의 삶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과 인연을 맺었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미완성된 역사가, 하지 못한 말과, 가보지 못한 곳, 끝내 이루지 못한 일들까지....."(p.41)


이를 생각하면 사실 그냥 오는 사람도, 그냥 사는 사람도, 그냥 가는 사람도 없다. 어느 누구도 애처롭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저마다 고유한 희극과 비극, 비밀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함부로 맞이하거나 보내서는 안 된다. 함부로 생각하거나 함부로 단정 짓거나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된다. 함부로 기억해서도 안 된다. 시간은 누군가의 안간힘이니까. 안간힘이었으니까. 


_ 소설을 읽고 처음에는 엄마의 시간을 생각했다. 언젠가 '정연'처럼 "엄마가 살던 집에서 엄마의 옷을 입고 엄마의 화장품을 쓰면서 살아가"(p.112)게 될 나의 시간을 생각했다. 자연스레 나의 뒤를 이어 '정연'처럼 살아갈 딸아이의 시간도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작가의 시간도, 또다른 독자들의 시간도 생각하게 되었다. 저마다 애를 쓰며 살아보고, 살아내고, 때론 살아진 시간에 대해서. 분명 존재했고 틀림없이 부재하게 될 테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 시간에 대해서. "부재하면서 존재하"(p.132)는 시간에 대해서.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지는 건"(p.132) 아닌 시간에 대해서. 그 불가의하고 불가해한, 그래서 소중하고 슬픈 시간에 대해서. 


_"누군가의 기억을 한 장면을 표현한 것만 같은 방 안의 풍경을 충분히 둘러본 뒤 나는 스탠드 조명을 다시 껐고, 이번엔 좀 더 어둠을 견딘 다음 도로 켰다. 

엄마가 보이지 않아도 부재하는 건 아니란 걸 확인하겠다는 듯이, 남몰래 그것을 학습하는 사람인 양....."(p.15)


"공포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공포는 두 겹이었을 터이다. 엄마의 영원한 부재에 대한 공포이자 엄마가 떠난 뒤부터 반복될 내 외로움과 죄책감에 대한 공포."(p.32)


"엄마가 투병하는 동안 나는 엄마의 현재에 내 미래를 투사하는 일에 더 성실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두려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걷고 싶을 때 걷지 못하고 배설해야 하는 순간에 타인의 손을 빌려야 하는 내 노년을 상상하는 일은 떨쳐내려 해도 떨쳐지지 않은 채 끈질기게, 그야말로 질리도록 끈질기게 이어졌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내 미래를 근심하느라 엄마가 직면한 현재의 불안과 고통을 자꾸만 잊는 내가 싫었고 징그러웠지만, 그렇다고 제어되는 것은 없었다. 서울의 병실에서든 J읍에서든, 엄마를 만나고 돌아가면 시간을 폭식한 듯 갑자기 너무 늙어버린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p.68)

매거진의 이전글 마지막 이야기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