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는 어떤 디자이너의 책상에서 예쁜 문진을 보았다. 똑같은 것을 따라 사기는 그렇고 폭풍 검색해 비슷한 문진을 구매했다. 며칠 후 실제로 받아 본 문진은 영롱하니 예뻤다. '얼른 인스타그램에 올려야지!' 애착인형과도 같은 내 애착책상(?) 여기저기 올려보고 휴대폰을 들이댄다. 어디가 좋을까, 얼마 전에 구입한 캔들 위에 놓으니 딱이다. 사진 몇 장을 찍어 잘나온 것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무심한 듯 몇 글자 적고 해쉬태그까지 야무지게 덧붙인다.
며칠 전에 읽은 책 리뷰를 이제 막 마무리했다. 미리 찍어둔 책과 독서노트 사진을 찾는다. 인스타그램을 열어 사진을 올리고 리뷰를 복사해 붙인다. 늘 어딘가 얼뜨고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지만 어쩔 수 없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아침 산책길 단풍이 아름답다. 휴대폰을 꺼내 나무 주변을 맴돌며 사진을 찍는다.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과 드리운 나뭇가지도 찍는다. 역시 인스타그램 앱을 연다. '가을이 가고 있다'라는 오글거리는 멘트와 함께 사진을 올린다.
그렇게 내 인스타그램에는 오늘까지 1,900여 개의 게시물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시시하고 소소한 나의 일상들. 작고 네모 반듯한 프레임 속에 존재하는 그곳은 지난 3년간 내가 만들어낸 세상이다. 오직 나만이 수정하고 삭제할 수 있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가공도 가능한 나만의 세계다. 비록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화려한 공간은 아니지만 나는 그곳이 좋다. 현실의 어둠이 끼어들 틈 없는 그곳을 나는 사랑한다. 거기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딸아이를 괴롭혀 늘어지게 만드는 발작 증상이 없다. 과호흡 하는 아이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런 아이를 끌어안고 그만 땅속으로 꺼져버리고 싶은 순간들도 없다. 힘들고 외롭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모든 것이 막막해 대강의 미래조차 그려볼 수 없는 암흑 같은 오늘의 절망도 없다. 대신 나는 내 눈물과 아픔을 잘라낸다. 가슴 속에 얼룩처럼 짙게 배어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오려낸다. 그러고 남은 테두리와 껍데기를 그 작고 네모 반듯한 프레임 안에 정성껏 담는다. 누구도 내가 무엇을 잘라내고 오려냈는지 모르는, 내가 만들어낸 나만의 세상.
매일 살얼음판 같은 하루를 지나며 나는 몇 번씩 그곳에 간다.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면 가닿을 수 있는 나만의 세계에. 그저 훑어볼 뿐이지만 그 찰나의 순간 나는 해방감을 느낀다. 6년 넘는 시간 내내 징글맞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고통으로부터 아주 잠시 벗어날 수 있다. 다른 세상에 온 듯 몽롱하기까지 하다. 그곳에는 타인의 세계도 존재한다. 역시 작고 네모 반듯한 프레임 안에 아름답고 정갈한 그들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들도 나처럼 잘라내고 오려냈겠지, 나름의 곡절이 있겠지, 알면서도 평온하게만 보이는 그들의 세계가 부럽다. 나의 비참한 현실과는 다른 그것들의 무탈함에 외롭고 쓸쓸하다. 해방감과 박탈감. 그 이중적인 감정에 혼란을 느낄 때쯤 정신이 든다. 그제야 나의 돌봄이 필요한 아픈 딸아이가, 감옥처럼 갇혀(?) 지내는 집안이 눈에 들어온다. 과연 끝이라는 게 있을까, 하는 익숙한 절망감과 함께.
"어떤 날에는 모든 것이 괜찮고 제대로인 듯 하지만 어떤 날에는 반만 그렇고 또 어느 순간에는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그것이 그의 흔한 아침인걸까. 선미도 에그머핀을 다 먹지는 못하고 남자처럼 반을 남겼다. 그리고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사람들의 화사한 일상을 SNS로 지켜보았다. 이 도시의 어딘가에서 시작되고 있는 그들의 아침이 이 작고 완전한 프레임의 사진들처럼 온전할지, 그러니까 제대로일지, 혹시 잘려나간 어느 편에서는 울고 나서 맞는 아침은 아닐지 생각하면서.(p.51)"
_김금희, <그의 에그머핀 1/2>,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중에서
작고 네모 반듯한 프레임 바깥이 '제대로이지 않고, 잘려나간 어느 편에서는 울고 나서 맞는 아침'이면 어떤가. 비참한 현실에서 잠시라도 도망칠 수 있는 피안의 세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 받는 삶도 존재하는 법이다.
나는 내일도 모레도 살뜰하게 잘라낸 내 삶의 테두리와 껍데리를 그 작고 네모 반듯한 프레임 안에 넣을 것이다. 시들어빠진 가짜 행복이면 어떠한가. 헛됨에라도 기대어 견디고 버텨낼 약간의 기력을 얻는 삶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