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어느 화요일

#1

진료실 23.

3년 전 병원을 바꾼 뒤 그녀는 두 달에 한 번 이곳에 온다. 1층 로비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바로 접수창구가 있고 그 양쪽으로 길게 복도가 이어진다. 이미 1층에서 진료비 수납을 마친 그녀는 곧장 왼쪽 복도를 향해 무거운 걸음을 옮긴다. 20, 21,...25. 복도 양쪽으로 네모난 번호판을 매단 진료실이 주욱 늘어서 있다. 진료실 23. 소아신경과 진료실이다. 이곳 대기실 정면 벽에는 큰 모니터 두 대가 있고 등받이가 낮은 의자들이 모니터를 향해 놓여 있다. 모니터 중 하나는 각 진료실 대기자 명단과 진료 순서를 알려주는 화면이 띄어져 있고 다른 하나는 대기자들을 위해 음소거된 TV 방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TV 방송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대기 환자 명단 가장 아래쪽에 아이 이름이 올라간 것을 확인한 그녀는 의자에 앉으며 시계를 본다. 3시 50분. 예약 시간은 4시 20분이다. 오늘은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옅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대학병원 예약 시간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진료는 늘 지연되어서 예약 시간에 진료를 받은 적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나마 이 병원은 나은 편이다. 이곳으로 옮기기 전 3년 간 다녔던 대학병원은 늘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해서 진료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지곤 했다. 특히 딸아이가 몹시도 힘들어해서 병원을 옮기고 얼마 후부터는 그녀 혼자 이곳에 온다.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그녀는 천천히 대기실을 둘러본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듯한 아이가 의자들 사이를 다니고 허리춤에 아기띠를 매단 엄마가 그 뒤를 쫓아다닌다. 할머니처럼 보이는 노인은 유모차에서 징징대는 아기를 큰 목소리로 달래고 있고, 엄마인 듯한 젊은 여자는 그 옆에 반쯤 넋이 나간 채 앉아 있다. 젊은 부모는 겉싸개로 싼 신생아를 안고 어쩔 줄 모르고 서 있고, 정수기를 못 만지게 하자 성이 나 발버둥 치는 아이를 쟁반 들듯 안은 여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로 돌아온다. 아이들이 많은 곳이니 번잡한 것은 당연하나 그 소란함은 놀이터나 놀이공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아이나 부모 모두 얼굴에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밀도 높은 무거운 공기와 혼잡함이 뒤섞여 있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 그녀는 육 년 전 아이가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조심스러운 눈길은 한 남자아이에게서 멈춘다. 여덟 살 정도 되었을까. 주니어용 유모차에 앉은 그 아이의 목은 뒤로 젖혀진 채 왼쪽으로 꺾여 있다. 목에는 하얀 거즈 수건이 둘러져 있고 몸을 덮은 얇은 담요 밖으로 한눈에도 앙상한 두 무릎이 살짝 나와 있다.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의 목은 자꾸만 아래로 떨구어져서 그때마다 아이 엄마는 유모차 등받이에 다시 목을 기대어 준다. 아이는 눈을 뜨고 있다. 마스크에 가려져 있지만 백지처럼 하얀 얼굴에 툭 불거진 두 눈의 흰자가 유난히 하얘서 검은 눈동자의 움직임이 또렷이 보인다. 엄마의 도움으로 다시 고개가 젖혀진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좌우로 천천히 움직인다. 아이는 눈이 부시지도 않은지 천장을 응시하고 있다. 그러다 점점 목이 아래로 향하더니 이내 푹 떨궈지고 만다. 이번에는 아이 엄마가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 있다. 아이는 엄마를 부르지도 칭얼대지도 않는다. 목이 아래로 꺾인 상태로 그저 앉아 있을 뿐이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간호사가 아이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아이 엄마는 아이의 목을 다시 뒤로 기대어 주고 유모차를 돌려 진료실로 들어간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을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빤히 쳐다보는 무해한 시선이 지워지지 않는 얼룩 같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소아신경과 대기실이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모니터로 딸아이 진료순서를 확인하고 앞을 향해 앉아 있지만, 사실 그녀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대신 저 아이가 그동안 보고 듣고 만지고 감각한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지 생각한다. 그리고 혼자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 곁에서 잠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는 아이 엄마의 삶을 생각해본다. 그러자 뱃속인지 가슴인지 몸속 어딘가에서 익숙한 불길이 솟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분노일까, 분노라면 무엇을 향한 분노인지 그녀는 모른다. 갑자기 이곳 공기가 견딜 수 없이 답답해진 그녀는 땀이 나기 시작한다. 외투 지퍼를 내리며 그녀는 속으로 내뱉는다. 대체 사는 게 뭔지, 빌어먹을 세상.


이날 병원에 오기 전 그녀는 아이 학교 앞에서 하교하는 아이를 기다렸다. 1시가 넘어가면 교문에서 아이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한다. 엄마를 부르며 달려 나오는 아이들, 친구들과 손잡고 무리 지어 나오는 아이들, 장난치며 나오는 아이들, 얌전히 나오는 아이들. 등하교 시간의 초등학교 앞은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그녀도 자신을 향해 달려 나오는 딸아이의 책가방을 받아 한쪽 어깨에 걸친 채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간식을 먹인 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병원에 온 참이다. 아까 그 아이는 학교에 다녔을까, 아니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까. 또래 아이들은 이렇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교문 앞에서 학원 가방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학원 얘기에 여념이 없던 엄마들은 어린이 병원 안에 이런 세계가 존재함을 알고 있을까.


오후 몇 시간 동안 전혀 다른 두 시공간을, 멀고도 가까운 두 장소를 모두 경험한 그녀는 두렵고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간다는, 그 새삼스러운 사실에 소름이 끼쳐 몸을 떨며 옷깃을 여민다.

_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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