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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항상

고양이를 쉽게 판단하는 오류

“어이 영감! 영감은 언제부터 내가 자네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나?”
고양이가 말했다
“글쎄 확실친 않지만, 내가 자네 밥을 챙겨주려고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나를 따라오는 걸 보고 이 고양이가 말을 알아듣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네”
노인이 말했다.
“그럼 고양이 자네는 언제부터 내가 자네 말을 알아듣는다는 걸 알았나?”
“영감 자네는 내가 ‘물 줘’라고 했을 때 물을 줬고 ‘밥 줘’라고 했을 때 밥을 주었다네. 보통은 잘 그러지 못하거든”
“허 말은 되는군. 어쨌거나 고양이 자네가 나에게 말을 걸어줘서 이렇게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네”
“친구는 무슨, 하여튼 이상한 영감이란 말이지. 나야 뭐 자네 덕분에 동정 받지 않고 먹고 자고를 해결할 수 있으니 더 바랄 나위 없지 뭐”
“고양이 자네를 동정? 글쎄 내가 보기엔 이 동네에 자네를 동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오히려 정신 나갔다고 소문난 내가 동정을 받는다면 모를까?”
“영감은 이렇게 나랑 이야기하는 모습부터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조심해야 하네. 그래야 나도 간만에 마음에 드는 이 동네에서 오래 머물 수 있고 말이야”
“허허 노력해보겠네. 나도 자네랑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다면 좋으니깐 말이야”
고양이는 영감이 차려준 음식을 마저 먹으며 이야기 했다.
“어쨌든 오늘 한 끼도 잘 먹었네 또 꿈꾸면서 나돌아 다니지 말고 집에서 티브이나 보다 자게나 영감”
“고양이 자네도 도로 건널 때나 낯선 사람 만날 때 조심하게나”
고양이는 자신을 걱정하는 영감의 마음에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대문 밖을 나와 돌고개 아래로 내려갔다.

돌고개는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문 경사지이다. 이 지역 대부분은 평지이고 언덕이 없는데 오직 이곳만이 언덕을 이루고 있다. 돌고개 아래쪽으로는 재래시장이, 그 반대편 아래쪽으로는 노인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고양이가 돌고개에 오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쯤 일이다. 이 고개를 지날 때 고개에 걸쳐진 해 질 녘 풍경에 반해 머물게 되었고, 우연히 동네 공원에서 고양이 말을 알아듣는 영감을 만나면서 영감네 집에 정착하게 되었다. 먼 옛날 고양이는 언젠가 부터 자신이 다른 고양이와는 다른 특별한 고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리 자신은 이제껏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고양이는 인간의 계산법으로 무려 500년 정도를 살아왔다. 그때부터 인간들을 지켜봤고, 인간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으며, 목숨 잃을 위험을 수백 차례 겪어 왔지만, 고양이는 이렇게 살아남았다. 세월에 따라 고양이에 대한 대우도 제각기이지만, 고양이는 그 누구보다 오래 살면서 체득한 지혜로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늦은 오후 고양이는 고개를 오르는 사람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지나쳤다. 이젠 이 구역에서 꽤나 유명해진 터라 특별히 괴롭히는 인간은 없다. 밤에만 조심하면 된다. 밤은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4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돌고개 거의 꼭대기에 위치한 편의점을 지날 때면 고양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사람들이 남긴 음식을 파라솔 주변에 놓아두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보통 이 시간 때 즈음인데 이때를 놓치면 다른 구역 고양이들이 먼저 와서 먹고 달아나 버린다. 잡을 수도 없고, 잡는다고 해도 어찌할 수도 없다. 그냥 일찍 가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오늘은 음식물이 남지 않았는지 편의점 파라솔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음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내리막 거리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음식을 들고 도망가는 고양이가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그냥 오늘은 영감이 준 식사하나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허탈한 마음에 고양이는 영감네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 순간, 고양이는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는 느낌을 받는다. 멈춰서 돌아보니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웬 처자가 입을 손으로 막고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요즘은 고양이들이 인기가 많다. 고양이는 처자의 그 모습이 낯설지 않으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처자는 휴대폰을 꺼내 멈춰서있는 고양이의 사진을 찍어댔다. 한참을 그러다 갑자기 고양이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한다. 고양이는 깜짝 놀라 달아나려는 순간, 처자는 고양이의 옆을 그냥 스쳐 지나쳐 간다. 그러고는 돌고개 편의점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고양이는 고개를 돌리고 다시 영감 집으로 향해가려는 그때, 뒤에서 고양이를 부르는 처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양아~ 이거 먹어, 배고프지, 이거 먹어”
고양이 통조림이다. 고양이는 오늘 횡재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먹고 남은 음식이나 먹고 있던 음식을 주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렇게 편의점에서 고양이 통조림을 사 와서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이다. ‘이따 들어가서 영감한테 자랑해야겠구만’이라고 고양이는 생각했다. 고양이는 사실 이제 처자가 두렵지 않지만 경계하는 척하며 뚜껑 까진 통조림을 향해 살며시 다가갔다. 그리고 혓바닥으로 살짝 맛본 다음 처자를 쳐다보았다. ‘찰칵’ 처자는 고양이가 달아날까 멀찌감치 서서 열심히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대고 있다. 고양이는 다시 통조림 먹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내 통조림을 비워버린다. 고양이는 앞발로 통조림을 슬쩍슬쩍 밀어보고는 처자 쪽을 쓱 쳐다보고 짧게 인사를 했다. “야옹” 그리고 영감 집으로 다시 향했다. 처자는 떠나는 고양이의 뒷모습 하나하나 휴대폰에 열심히 담아내고 있었다.
고양이는 모퉁이를 돌아 얼른 영감네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마루에 앉아 있는 영감을 향해 고양이는 물었다.
“영감 요즘 편의점에 파는 고양이 통조림은 한 얼마 즈음 하나?”
“글쎄 담배 한 갑 정도 하지 않을까?”
“어제 어떤 처자가 그걸 사서 날 주지 뭔가”
“어이쿠 완전 횡재했구만 이래서 집밥이 맛이야 있겠어?”
“고양이들은 인간들과 달라서 먹을 수 있을 때 충분히 먹어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언제 다시 굶게 될지 몰라”
“그건 그렇겠군”
“근데 예전에는 인간들도 우리처럼 그렇게 사는 것 같더니만 요즘은 안 먹는 게 건강을 지키는 거라지?”
“그것도 그래, 자넨 참 인간이 신기하겠구먼”
“인간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서부터 난 인간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네. 그냥 외톨이 인간 말일세”
“난 자네가 인간이라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긴 하네”
“아마 난 자네보다 훨씬 잘생긴 몸뚱아리를 가지고 있을 거야 지금도 인기가 많지만 아마 더 인기가 많겠지”
고양이는 대문 밖을 나가며 말했다.
“집 잘 지키고 있게 영감, 괜히 또 꿈꾸며 돌아다니다 경찰서에서 자식들 부르지 말고 말일세”
“걱정하지 말게. 고양이 자네도 도로 건널 때 사고 나지 않게 조심히 다니게나”
고양이는 자신을 걱정하는 인간이 익숙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가볍게 다시 편의점 쪽으로 걸어갔다.
혹시나 어제 그 처자가 다시 맛있는 통조림을 열고 기다리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편의점 입구에 다다랐을 때 파라솔 아래 어제 먹은 것과 같은 통조림 깡통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양이는 기분이 좋아지며 통조림으로 다가가서 들여다보았는데 속이 텅텅 비워져 있었다. ‘뭐야 이거?’ 고양이는 실망하며 돌아섰다. 그때 언덕 아래쪽으로 옆 구역 고양이 한 마리가 내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틀림없이 저 녀석이 내 통조림을 낚아채 갔구만’ 고양이는 소리를 지르며 옆 구역 고양이를 쫓아갔다. 옆 구역 고양이는 뒤쫓아 오는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도망쳤다. 고양이는 한동안 달려가다 더 이상 따라 갈 수 없을 것 같아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앞서 뛰어가는 고양이를 향해 “다시오면 그땐 혼날 줄 알아!!”라고 고양이 말로 소리쳤다. 한동안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가끔 아랫동네 음식 사정이 좋지 않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오늘 고양이가 잃은 것은 다름 아닌 고양이 통조림이다. 고양이는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다. 고양이는 투덜거리며 영감의 집으로 돌아갔다.

영감의 집 마당에 도착한 고양이는 영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감 물도 안 떠 두고 어디 간 거지?”
방문을 향해 고양이는 영감을 불러보았지만, 방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바로 그때 사람의 인기척이 대문 밖에서 들렸다. 그리고 곧 제복 입은 경찰이 영감을 들쳐 메고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경찰은 고양이를 발견하고 눈길을 주며 말했다.
“어휴, 고양아! 영감님 데려왔다. 제발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해라”
가끔 나를 향해 돌을 던지는 재수 없는 경찰 녀석이다.
“너나 제발 헛소리 좀 하지 마”라고 고양이는 고양이 말로 말했다.
경찰 청년은 할아버지를 마루에 앉히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예 다시 모셔뒀어요. 예 예 자식들한테 연락 안 해도 될까요? 아 예 뭐 신고 들어오기 전에 저희가 먼저 발견했으니깐 그냥 조용히 넘어가죠. 예전에 보니깐 영감 자식들 서로 안 데려 가려고 눈치 엄청 보는 것 같던데. 에휴 꼴도 보기 싫어요. 예 예 알겠습니다. 순찰 도는 애들한테도 똑같이 이야기 해둘게요 예 곧 들어가겠습니다”
경찰은 전화를 끊고 고양이를 보며 이야기 했다.
“어이 고양이 !!저 정신 나간 영감님 한번만 더 밖에 나오면 다음엔 너를 혼내줄 거야”
고양이는 온몸의 털끝을 세우며 경찰 녀석을 쏘아보았다. 경찰 녀석은 대문을 쾅 닫으며 밖으로 나갔다. 고양이는 마루기둥에 기대앉아있는 영감을 바라보았다.
’영감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영감의 초점 없는 눈이 안타까워 보인다.
’영감이 꿈에서 깨기 전까지는 물은 못 마시겠구만’
고양이는 단념하고 편의점 쪽으로 걸어 나섰다.

편의점에 다다랐을 때 파라솔에 앉아 있는 처자를 보았다. 처자는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기다렸다는 듯 안고 있던 가방을 뒤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고양이 통조림을 꺼냈다. 아마 처자는 고양이를 만날 것을 대비해서 가방 안에 항상 통조림을 넣어두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양이는 지금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목이 말랐다. 통조림보다 물 한 모금이 더 급했다. 고양이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눈앞에 놓인 통조림을 밀어내며 ’물 줘!’ 라고 고양이 말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처자는 실망한 눈빛을 보였다. 그러다 불현듯 눈빛이 반짝거리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생수병 하나를 들고 나와서는 생수병 뚜껑에 물을 조금 따라 주었다. 고양이는 그 물을 핥아 먹었다. ‘돈 많은 처자구만’ 고양이는 처자의 주머니 사정에 감탄하며 따라주는 물을 마셨다. 그러다 처자가 말을 했다.
“초코야 목말랐어?”
’초코?’ 고양이는 순간 자신의 만 번째 즈음 되는 이름을 듣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엔 초코구만, 맘대로 부르게나’
목마름을 채운 고양이는 통조림까지 이내 비워 버리고 영감네 집을 향해 돌아서 걸어갔다. 영감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처자가 “초코야, 잘 가”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고양이도 돌아보며 “잘 먹었네 처자 자네도 조심히 돌아가게나”라고 고양이 말로 이야기했다.
아마 처자는 고양이보다 한참은 어릴 것이다

이른 오후 고양이가 영감네 집에 도착했을 때 영감은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어이 영감 꿈은 잘 꿨어?”
“또 똑같은 꿈을 꿨다네. 그날 밤이 자꾸 꿈에 나타나”
“매번 꾼다는 그 꿈 말이군”
“무척이나 시끄러웠던 그 날 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청년들과 학생들이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밤새 호소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지. 어머니는 내 곁에서 밤을 새우며 나를 못 나가게 하려고 지키고 있었고”
“무서웠겠지. 난 자넬 이해한다네 그날 밤엔 누구라도 그랬었네. 그때 나도 근처 군부대 안에 있었는데 모두들 서로를 무서워했다네”
“결국 이렇게 남은 자는 벌을 받는 거지”
“그래도 매번 꿈 꿀 때마다 그날 하지 못한 걸 한답시고 뛰어나가면 어찌 하는가”
“그렇게라도 해서 마음이 편해지고 싶은 가 보지. 한 순간도 그날을 잊은 적이 없네”
고양이와 영감은 각자 그날 밤과 낮에 있었던 일들을 한참 동안 다시 떠올렸다. 그러다 고양이가 다시 말을 했다.
“어쨌든 이번에는 재수 없는 경찰 녀석이 영감을 업고 왔다네. 맘에 들지 않는 녀석이야 그래도 자네 자식들에게 연락을 안 한 것은 다행이지”
“또 신세를 지고 말았군. 계속 이렇게 남들에게 피해만 입힐 거라면 가끔은 그냥 사라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네”
“그건 나도 가끔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나랑 있는 동안에는 그럴 꿈도 꾸지 말게. 얼마 만에 만난 말이 통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되어선 안 돼”
“자넨 언제까지 여기 머물러 있겠다고 했었나?”
“글쎄 난 항상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의심하는 순간 그곳을 떠나왔었네. 요즘 들어 자네랑 이렇게 이야기하는 모습만으로도 벌써 뒤에서 쑥덕쑥덕 하고 있으니 그리 멀지는 않은 것 같네”
“하긴 미친 노인네랑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자네한테도 좋을 리는 없겠지 허허”
“그래 그렇게 웃으며 지내게. 나처럼 몇백년 살 것이 아니라면 웃으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알겠네. 어쨌든 이번에도 놀라게 해서 미안하네. 친구”
“친구? 웃기지도 않는구만. 나이로 치자면 난 자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곱절은 되는 나이라네”
고양이는 구석 보금자리로 향해 갔다. 영감이 말했다.
“안녕히 주무시게나. 친구”
고양이는 들은 체 만 체 하며 구석자리로 가서 잠을 청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고양이는 시간의 흐름에 둔하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고양이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눈앞에 노을빛이 앞마당까지 침범해 있는 것이 보였다. 고양이는 머리맡에 놓인 물로 마른입을 적신 뒤 주변을 둘러봤다. 영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방안에서는 TV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영감 어디 갔나?’
고양이는 마루 위로 올라가 영감의 방 문틈을 들여다보았다. 영감은 방안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마루 아래를 바로 보니 영감의 신발이 그대로 있는 것이 보였다. 고양이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아 또 꿈을 꾸며 나갔나 보구만, 곧 해가 질 텐데 이거 큰일인 걸’
영감은 가끔 꿈을 꾸며 나가기는 했지만 늦은 밤, 그것도 하루에 두 번이나 꿈을 꾸며 나간 적은 없었다. 해는 어느덧 주황색 마지막 빛을 쥐어 짜내고 있었다. 고양이는 빠른 네 발 걸음으로 대문 밖을 나섰다. 더 늦기 전에 영감을 찾아야 할 것 같아서였다.
해는 저물며 돌고개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고양이는 서둘러 이리저리 골목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영감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돌고개 파출소 앞을 지나가 보았지만 빌어먹을 경찰 녀석이 열심히 핸드폰을 보며 낄낄거리는 모습만 보고 왔다. 영감은 그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해가 완전히 저물었을 때 고양이는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늦었다간 영감을 발견하더라도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고양이는 영감이 자주 가는 국밥집, 편의점, 작은 공원의 대청마루 등 갈만한 곳 모든 곳에 들렀지만, 영감을 찾을 수 없었다.
‘이거 큰일인데’
고양이는 걱정을 넘어선 두려움에 휩싸이고 있었다. 친구를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좁고 어둑한 골목에서 신음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고양이는 귀를 쫑긋 세우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두운 골목길 안쪽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재활용 쓰레기 더미 옆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영감이었다. 영감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지 눈을 감고 벽에 기대어 앉아 신음하고 있었다. 신발은 신고 있지 않았고, 옷차림은 낮에 본 그대로였다. 고양이는 영감 옆으로 다가가서 영감의 발바닥을 앞발로 건드리며 깨워보았다. 하지만 영감은 아주 작게 움직일 뿐 전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는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골목을 빠져나온 고양이는 편의점을 향해 달려갔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아르바이트생 녀석이 있다면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이었다. 편의점에 도착한 고양이는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심술궂은 사장 녀석이 편의점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였다. 고양이를 보면 발길질을 하거나 물을 뿌리는 아주 못된 녀석이었다. 다른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찾기 위해 편의점을 지나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지만, 해 질 녘 돌고개는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없는 고요한 모습이었다.
바로 그때, 고양이는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초코야!! 안녕”
처자였다. 고양이에게 항상 맛있는 통조림을 챙겨주는 통조림 처자였다. 처자는 고양이를 발견하자 걸음을 멈추고 둘러메고 있는 백팩을 내려 지퍼를 열고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했다. 고양이는 재빨리 처자에게 다가가 처자의 가방에서 삐져나온 수첩 하나를 물고서 영감이 있는 방향으로 냅다 달렸다. “안 돼 ~ 초코야! 그거 아니야 그건 안 돼!” 처자의 음성이 고양이의 뒤에서 들렸지만 고양이는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간 뒤 고양이는 거리를 둔 채 돌아보며 처자가 자신을 따라올 수 있게 바라보았다. 고양이와 처자, 그 둘의 눈이 마주쳤을 때 처자는 무엇인가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아!! 내가 널 따라가야 하는 거니?”라고 물었다. 고양이는 짧게 ’야옹’ 대답하고 다시 빠른 걸음으로 영감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영감이 있는 골목에 다다르자 고양이는 처자가 따라오는 모습을 다시 확인했다. 처자는 골목 근처에 왔을 때야 영감이 내는 신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처자는 골목 안쪽에 할아버지가 쓰러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란듯 했다. 그리고 또 입을 틀어막고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눈빛이 바뀌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파출소죠? 여기 골목에 웬 할아버지가 골목에 앉아 있는데 편찮으신 것 같아요”
휴대폰이 대답을 했다.
“예 맞아요. 머리 새하야시고 안경을 쓰고 계세요”
휴대폰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저기요. 할아버지가 지금 골목에 앉아 계시다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휴대폰이 조잘거렸다.
“정말!! 아저씨 경찰 아니에요? 사람이 골목에 앉아있고 정신이 없다는데 알아서 들어간다고 돌아가라니요 아저씨 정말 뭐하는 사람이에요!! 아저씨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저 그냥 119 전화한 다음에 경찰서에 정식으로 항의할 거예요.”
휴대폰이 잠깐 침묵한 뒤 다시 조잘거렸다.
“여기 편의점 뒤쪽에 있는 골목길인데 빨리 와주세요!!”
고양이는 ‘고 녀석 쌤통이다’라고 생각했다.
처자는 통화를 마친 뒤 영감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어디가 편찮으세요?”
영감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다.
처자는 고양이를 돌아본 뒤 말을 했다.
“네가 할아버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온 거니?”
고양이는 고양이말로 말했다.
“야옹”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 순찰차 하나가 골목 입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차 안에서 버릇없는 경찰 녀석이 나왔다.
처자는 토끼 눈으로 경찰을 쏘아보았고, 경찰은 ‘아 이 할아버지 가끔 이러다가 그냥 들어가신다니까 그러네’ 하면서 투덜거렸다.
처자는 핸드폰 카메라로 경찰차와 할아버지와 경찰 녀석의 모습을 촬영하며 경찰에게 말했다.
“자꾸 이러시면 정말 정식으로 민원 넣을 거니까 할아버지 어서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아 네! 네!”
버릇없는 경찰 녀석은 영감을 흔들어 깨워보지만 영감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경찰 녀석은 한동안 투덜거리며 어딘가로 전화해서 한동안 통화를 했다.
“접니다. 여기 도착했는데요. 아무래도 제가 다시 데려다 줘야 할 것 같아요. 아 그게 좀 .. 예 그냥 제가 모셔 드리고 자식들한테 연락할게요. 예 그럼 일단 모셔다 드리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경찰 녀석은 통화를 마친 뒤 영감을 들쳐 업고 골목을 나왔다. 영감을 들춰 멘 경찰 녀석은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시비조로 말을 걸었다.
“내가 아까 할아버지 잘 지키라고 했어? 안 했어? 너 다음에 보면 혼 날줄 알아”
“하여튼 재수 없는 새끼구만”이라고 고양이는 고양이 말로 말했다.
고양이는 영감을 업은 경찰을 뒤따라갔다. 영감의 집에 도착한 경찰은 대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간 뒤 신발을 신은 채로 방 안에 들어가 영감을 옮겨 눕혔다. 그러고 나와서 휴대폰을 들고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양이는 처자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대문 쪽에서 처자는 열심히 핸드폰으로 모든 상황을 촬영하고 있었다. 경찰이 통화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것을 본 고양이는 다시 자신의 잠자리를 향해 들어갔다. 그리고 고양이는 처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경찰 녀석을 보다 하늘 위에 어느새 빛나는 별을 발견하고 고개 들어 쳐다보았다. 고양이는 영감이 걱정되었다. 낮에 잠을 오래 잔 탓도 있지만, 왠지 오늘 밤은 잠이 잘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이 왔을 때 고양이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영감의 마당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영감의 자식들이었다. 고양이는 시끄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대문 밖으로 나가려했다. 그때 영감의 아들로 보이는 녀석이 고양이를 발견하고 헛발길질을 하며 말했다. “에휴. 영감탱이 집에 저런 도둑고양이를 키우니 복이 다 달아나지!!” 고양이는 서둘러 영감의 집을 빠져나갔다. 돌아보니 마루에 기대앉아 있는 영감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고양이는 그날 하루 종일 돌고개 주변을 돌아 다녔다. 어젯밤의 소동에 비해 돌고개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고양이가 이 돌고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괴롭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돌고개의 해 질 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였다. 그 눈부신 해질녁 풍경에 눈이 묶인 채 고양이는 다시 영감네 집을 향해 걸어갔다. 영감의 집 앞 대문 앞에 다다랐을 때 고양이는 영감의 집에서 나오는 통조림 처자와 마주쳤다. 처자는 고양이를 발견하자마자 달려왔다.
“초코야 안녕! 집 앞에 맛있는 거 뒀어. 맛있게 먹고 내일 봐”
고양이는 통조림 처자의 말을 듣고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영감은 대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었다. 노을이 지고 있는 마당을 쓰는 영감의 긴 그림자를 보며 고양이는 왠지 모르게 곧 다가올 변화를 직감했다.
“영감 꿈은 잘 꿨어?”
하던 일을 멈추고 영감은 고양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젯밤 꿈은 더 좋지 않았네. 40년전 그날 밤, 골목에서 들렸던 소리를 따라나가 그 학생들을 잡아보려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과 함께할 수가 없었네. 난 달리고 또 달렸지만 결국 그들을 놓쳐버리고 그들은 또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네. 늘 생각하지만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꿈이야”
“저런 많이 힘들었겠구만. 그나저나 자네 자식들이 왔다 가는 것 같더니”
“다녀갔지. 그래서 더 기분이 좋지 않아 졌지”
“이제 꿈도 조금 덜 꾸고 한동안 조용히 지내게나”
“그랬으면 좋으련만 이제 난 이 집에서 떠난다네”
고양이는 그제야 영감의 방문 입구에 놓인 짐 보따리를 발견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 건가?”
“아마 어느 요양원에 들어가지 않겠어?”
고양이는 요양원이라는 곳이 인간이 죽기 전까지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안다.
“자네 자식들이 결정한 것인가?”
영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날 밤 그 학생들을 따라나서지 못한 난 자식들에겐 짐일 뿐이지. 주변 사람들이 다들 유공자니, 뭐니 하며 혜택을 받을 때 우리 자식들은 못난 아비가 얼마나 원망스러워겠나? 그리고 이젠 이렇게 제 앞가림도 못 하고 있으니 결국 난 자식들에게 이제 어딘가에 가둬두고 신경 쓰지 않아야 할 짐이 되어버린 걸세”
“그래서 영감은 그날 밤 학생들을 따라나서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겐가?”
“후회? 시간을 돌려 되돌아갈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뿌리치고 그 학생들을 따라나섰을 것이네”
고양이는 물었다.
“그런데 자네 자식들은 왜 그렇게 자네를 걱정하다 못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영감은 대답했다.
“그 아이들은 내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으면 하는 거야. 안타깝지만 그게 사실이야”
“그렇다면 그냥 신경 쓰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네들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일말이나마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인간들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군. 왜 그렇게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신경 쓰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말이야 어차피 죽을 때 떠나는 것은 본인뿐일 텐데”
“한 치 앞도 모르는 우리가 어떻게 그걸 알겠나? 어쩌면 내일 하루도 오늘과 같을 거란 착각이 사람을 더욱 잔인하게 만드는 걸지도 모르겠네”
영감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래 이제 자넨 어쩔 건가? 이제 더 이상 이 집에 머물 수 없을 건데”
“나야 뭐 언제나 그랬듯 또 다시 다른 곳으로 가게 되겠지”
“그래서 말인데 자네에겐 미안한 말이네만 날 구해준 처자에게 자네 이야기를 했다네” 영감은 말을 이어갔다.
“아 물론 나랑 말을 주고받는다는 이야기를 제외하고 말일세”
고양이는 계속 들었다.
“그저 착한 고양이라고 내가 떠나면 누군가 돌봐주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자기가 자네를 데려가면 좋겠다고 하더군, 어때? 자네 생각은 어떤가?”
“영감. 자넨 자네가 날 돌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우린 분명 서로를 돌봐왔지”
“아니 틀렸네! 우린 서로를 돌보지도 또 의지하지도 않았네. 그저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자유를 지켜준 것이네”
“그래 맞는 말일세. 그래도 한번 생각은 해보게나 착한 처자인 것 같으니”
고양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양이는 생각했다. 처자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어디로 떠나가야 할지를 말이다.
“영감. 어쨌건 이제껏 말동무가 되어 주어 고마웠네,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은 편히 주무시게나”
“그래 자네도 편히 쉬게나”
고양이는 돌아서서 보금자리로 들어갔다. 보금자리 입구에 처자가 놓아둔 통조림이 까져있었다.
’마지막 식사치곤 꽤나 훌륭하구만’이라고 고양이는 생각했다. 그날 밤 고양이와 영감은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햇살이 영감네 대문을 넘어오기 시작할 즈음 영감은 대문에서 들려오는 이른 인기척에 눈을 떴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 캐리어를 든 처자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초코야”라고 고양이를 부르는 처자를 본 영감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양이가 자던 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고양이가 없었다. 빈 통조림 깡통과 고양이가 마시던 물그릇만이 남아있었다. 영감은 쓸쓸한 기분을 느끼며 홀로 돌고개를 내려가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생각했다. 고양이는 원래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돌보아진 적도 없었고, 누군가를 돌본 적도 없었다. 고양이가 떠난 것을 본 처자는 휴대폰을 들고 고양이의 마지막 빈자리를 사진 찍었다.
고양이는 항상 누군가에게 돌봐지기 전에 떠나왔었다.
고양이는 항상 먼저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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