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와 꾸지람이 만난 날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머리를 말릴 기운도 없어 두피만 대충 말리고, 스킨과 로션, 선크림으로 얼굴을 얼버무린 채 전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얼굴은 그저 평범하고 피곤한 직장인의 얼굴이었지만, 내 마음은 조금 달랐다. 새벽에 도착한 메시지 하나가 그날의 공기를 달리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린 씨. 아니, 하린아. 우리 인연 평생 가자.”
미야 선생님의 축하였다. 손바닥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나는 곧장 답장을 보냈다.
“선생님은 저의 브라이언 와이스 박사님이에요. 제게 평생 브라이언 와이스 박사님으로 남아주세요.”
몇 줄 안 되는 문장이었지만, 그날의 공기는 그것만으로 충분히 설레었다.
이번 생일은 내게 특별했다. 개명 후 처음 맞는 생일이었으니까. 새 이름으로 다시 살아가기로 한 첫해, 그 첫 번째 생일은 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다짐 같은 날이었다. 이름이 바뀌면 인생도 새로 시작될 수 있을까. 나는 그 작은 믿음을 손에 쥔 채 전철을 타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아무도 몰랐다. 입사한 지 겨우 일주일 남짓, 친분이 쌓일 틈도 없는 동료들에게 내 생일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기념일을 품고 앉아 있는 기분은 묘했다.
길었던 하루가 끝날무렵 퇴근시간이 다가오고 후처리를 하던 중, 팀장님의 지시를 받은 한 선배가 내 옆에 앉아 화면을 함께 보며 멘토링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고마웠다. 하지만 곧 목소리의 결이 달라졌다.
“이건 저번에 배우지 않으셨어요? 속도가 너무 느려요.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안 하셨어요? 이거 다 수기로 하셨어요? 노트에 적으면서 처리하시는 거예요? 장비가 안 맞으면 개인 걸로 바꾸시고요. 하린님, 이거 확인해야 할 건 몇 건이나 남은 줄 아세요? 알고 계세요? 하린님. 하린님. 하린, 하린…”
말은 하나하나 옳았다. 하지만 그 말투는 가르침이 아니라 검열에 가까웠다. 짧은 지적들이 빗발치듯 쏟아질 때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반복되는 내 이름은 이름이 아니라 낙인이 되는 것 같았다. 더구나 마우스와 키보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마음이 확 무너졌다.
“능률을 위해서라도 하린님께 맞는 걸 사서 쓰시면 도움이 될 거예요.”
선배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겐 ‘돈까지 쓰라는 건가’ 하는 생각만 남았다. ‘내 장비는 내가 알아서 할 텐데, 지가 뭔데 사라마라야.’ 순간, 기분이 확 상했다. ‘선배님은 처음부터 완벽하셨나요?’라는 질문이 목끝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삼켰다.
퇴근 무렵, 기찬이가 회사 앞으로 데리러 오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그 사이, 친구와 지인들의 축하 메시지가 쓰나미처럼 쏟아졌다. 손바닥 위로 파도처럼 밀려드는 알림창들을 보며 마음이 잠시 들떴다. 하지만 핸드폰을 확인하려는 순간, 팀장님의 한마디가 하루의 방향을 틀었다.
“하린님, 회의실로 오세요.”
팀의 실수로 회사에 큰 손실이 생겼다고 했다. 팀장님은 대표로 야근과 경위서를 써야 했다. 정작 신입인 나는 상황을 다 알지 못했지만, 선배들과 함께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사실 그 순간이 억울하거나 부당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나도 이제 이 팀의 일원이 되었으니, 신입이라 해도 같은 소리를 듣고 배워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다만, 하필이면 내 생일날 이런 일이 터졌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어리둥절하게 회의실에 들어갔다가, 괜히 내 생일과 겹쳤다는 이유로 서러움이 더 깊어진 것이다.
팀장님은 내게 “신입인데 이런 소리를 같이 듣게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이제 같은 팀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지만, 이미 마음은 내려앉은 뒤였다. 새 이름으로 맞은 첫 생일이라는 사실이, 서러움을 더 깊게 울렸다.
휴게실에서 한참 울고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 손놀림은 어색했고 일은 더뎠다. 멘탈이 무너지면 몸도 따라 무너진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퇴근이 늦어지자 기찬이는 주차할 곳이 없다며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소소한 약속마저 무너지는 순간, 대단히 특별한 걸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축하와 함께 편히 퇴근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서러워 또 눈물이 번졌다.
그때 옆자리의 다른 선배가 조심스레 물었다.
“하린님, 모르는 거 있어요? 도와드릴까요?”
같은 ‘선배’라는 이름 아래에도 결은 이렇게 달랐다. 누군가의 말은 나를 주저앉혔고, 또 다른 누군가의 말은 나를 다시 세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 창문에 비친 얼굴은 그저 또 한 명의 피곤한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질문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 선배는 정말 필요한 소리를 한 걸까, 아니면 나를 갈군 걸까?
내가 괜히 생일이라 동정을 바란 걸까?
생일이 아니었다면 더 단단히 넘겼을까?
그리고 다음날, 나는 결국 아파서 출근하지 못했다. 아침에 늦게라도 가겠다고 연락했지만, 많이 지쳐 10분만 더 잔다는 게 4시간을 내리 자버렸다. 팀장님은 결근 처리를 해주셨다. 병원에 가니 목이 많이 부었다고 했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누워 있으니, 생각이 더 또렷해졌다.
그날의 눈물은 단지 약한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개명 후 처음 맞은 생일에 기대했던 설렘이 한순간 무너져 남긴, 오래 남을 아이러니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