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전용 채팅방이 있다. 모르는 걸 묻고, 선배들이 답해주는 곳이다. 나는 그곳에 질문이 아니라 보고를 남겼다. 애매한 건이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프로세스대로 처리했다. 잘못은 없었다. 다만 이렇게 처리한 게 맞는지, 후처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렇게 처리했습니다. 맞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라고 남겼다.
그런데 한 선배가 날카롭게 비꼬았다. “여기는 하린 씨 뒤치다꺼리하는 곳 아니에요. 내일 하기도 바쁜데, 왜 이런 걸 여기 올려요?” 전에도 몇번 이런 비꼬는 말투를 들은 적이 있고 나는 늘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를 채팅창에 남기며 참아 왔었다. 하지만 이번엔 순간 욱하는 마음이 치밀었다. 나는 참지 않았다.
“앞 처리는 제가 했습니다. 후처리는 잘 몰라서 제가 제대로 한건지 천천히 시간이 나실때 봐주십사 확인 부탁드린 겁니다. 선배님께 당장 처리해달라고 부탁드린 적 없습니다. 이건 긴급해서 선배님들이나 팀장님도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보고차원에 알려드린겁니다. 제가 많이 미숙한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자꾸 그렇게 꼬아서 하시니까, 저한테는 날카롭게 들립니다. 기분이 많이 나쁩니다.”
정적이 흘렀다. 채팅방은 조용해졌다. 나는 결국 들이받은거였다.
한참 뒤, 팀장님이 채팅을 보고 말씀하셨다. “하린 씨가 신입이라 잘 모르는 건 맞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도 그렇게 쌀쌀맞게 말할 건 아니죠.” 그러면서 내게도 덧붙이셨다. “하린 씨도 선배들이 바쁘게 업무하며 하린씨 도와주고 있는거에요. 웬만하면 프로세스 활용해보면서 혼자 처리해보고, 정말 모르면 그때 물어보도록 노력하세요.”
나는 알았다. 팀장님이 선임의 체면을 세워주면서도, 동시에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셨다는 것을. 괜히 내 편만 들어주면 ‘나대는 신입’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대신 팀장님은 중재하면서 선임의 기도 살리고, 내 마음도 지켜주셨다. 정치적이기보다는 현명했고, 따뜻했다. 그 순간 팀장님이 정말 완벽한 어른 같아 보여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속은 시원했다. 그동안은 무조건 “죄송합니다”만 반복하던 내가, 오늘은 당당히 “이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미숙하다. 선배들 도움 없이는 버겁다. 그러나 모르는 게 있다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신입이니까.
이상한 건, 그 뒤부터였다. 선배들의 잔소리가 확실히 줄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실수하면 지적은 받지만, 예전처럼 가볍게 비꼬진 않았다. 아마도 오늘, 내가 기분 나쁘다고 드러낸 순간, 그들도 나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게 아닐까.
잘한 건지, 잘못한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맞고만 있는 신입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내 길을 살려주고 선임의 얼굴도 세워준 팀장님의 현명함에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것.
다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이빨을 드러내는 게 옳은 걸까? 정답은 아직 모르겠다. 다만 오늘 하루만큼은, 나 스스로를 지켜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