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중일기 19. 러닝을 좋아하게 된 이유
아는 작가님과 이야기하다가 좋아하는 감독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나는 딱히 좋아하는 감독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아하는 감독이라는 조건은 그 사람의 모든 작품을 섭렵하고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도 빠짐없이 좋아하는 것을 나아가 인간적으로도 그 사람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내 대답은 '없다'였다. 작가님은 '왜 없어요?'라고 다시 물어보았다. 그 작가님의 '왜'라는 뜻은 작가라면 좋아하는 감독 한 명은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내 기준이 높은 걸 어쩌겠나. 작품이 좋아도 존경하는 마음이 안 들면 좋아하지 않는 것에 속했고, 더군다나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니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범주에 들지 못했다. 이것은 너무 좁은 폭의 취향에 속했다.
이 좁은 취향의 폭은 인생 책이나 인생 영화,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폭이 너무 좁다 보니 인생 책의 경우, 내용이 마음에 들었더라도 책과 관련된 추억이 없으면 인생으로 꼽지 않았고, 인생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사람이 유명한 작가나 감독과의 연이 닿을 리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예술인은 거의 0명에 가까웠다.
이 대화를 나누고 난 뒤에 관점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되 기준은 70퍼센트 이상 좋아하더라도 무조건 써보기로. 70퍼센트라는 기준은 꽤 높아 내가 내 자신을 100퍼센트 좋아하기도 어려움으로,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는 사람을 그 사람의 작품 활동만을 기준으로 삼아서 좋아한다면 이미 그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70퍼센트 호감을 가지고 만난다는 것에 속하니까.
70퍼센트를 기준으로 목록을 작성하다 보니 러닝도 자연스럽게 그 목록에 끼게 되었다. 나와 100% 맞는 운동은 아니지만, 제법 좋아하는 운동에 속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런중일기라는 글도 연재해 보자는 결심에 이르렀다.
70퍼센트 이상 좋아해도 좋아하는 것의 목록에 포함하는 것은 스스로를 너무 까다로운 기준에 가두지 않으려는 다짐이다. '그냥 그래'라는 대답이 50%라면 '해볼까?'에서 '좀 괜찮은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면 모두 이 70퍼센트의 범주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무엇인가 70퍼센트를 좋아해도 30퍼센트 싫어하는 부분이 살짝 메워진다. 이런 식으로 좋아하는 것의 범주를 넓혀가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한정원 작가도 여름을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에 두지 않았던가.*
오늘은 좋아하는 것의 목록에 해마와 자전거를 기록해 두었다.
* 한정원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난다, 2024
2024년 10월 23일 수요일에 발견한 이야기.
※ 밀리로드에서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