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중일기 20. 배려의 달리기
달리면 달릴수록 달리기는 배려를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언론에서 대규모 러닝 크루들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그건 아마 러너 중 아주 일부에 해당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달리는 중 목격한 러닝 크루는 10명이 채 안 되는 그룹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들과 만나도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한강길에서 함께 달리는 사람을 보면 감탄이 먼저 앞선다. 그들 중 누군가는 원래 페이스보다 낮게 달릴 테고, 또 누군가는 무리를 해서 페이스를 좇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특히, 남녀 커플이 함께 달리는 모습을 보면 그런 마음이 더 든다. 둘 중 한 명이 배려한다는 생각보다, 둘 다 서로를 위해 배려하고 것이라는 판단이 앞선다.
생활도 마찬가지다. 누구 한 명이 일방적으로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고 있기에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나에게는 반려를 약속한 동반자와 반려로 받아들인 고양이가 있다. 그 둘과의 생활을 잘 꾸려갈 수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 배려를 받고 있다고 믿는다. 곤히 잠에 빠진 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움직이는 것, 밥을 같이 먹기 위해 시간을 넘어 기다리는 것, 하루 루틴을 위해 잠을 재촉하는 것, 당신의 여가를 위해 나의 쉼은 미뤄두는 것, 나의 노력을 알아줄 때까지 굳이 말하지 않는 것들. 나는 얼마나 많은 배려 속에 살고 있는가. 우리 셋은 오래오래 발맞춰 달리기 위해 때로는 속도를 높이고, 때로는 속도를 늦춰가며 삶의 페이스를 맞춰가고 있다. 그런 사람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혼자 달리면서도 배려는 계속된다. 오늘은 내가 피곤한 일이 많았으니 조금 천천히 달리자. 어제는 푹 쉬었으니, 오늘은 속도를 높여보자. 이런 식으로 내 몸과도 끊임없이 대화하며 페이스를 맞춰 나간다. 달리기는 그저 혼자 달리는 것이 아니라 몸과 머리가 계속 대화하는 것. 협상과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곧 달리기다. 하긴, 그렇지 않은 운동이 어디 있겠는가.
런중일기 연재의 마지막에는 혼자 달리지만, 알고 보면 혼자 달리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달리는 길 위에 마주치는 사람과 함께 달리고, 그곳에는 강물도 새들도 곤충도 풀과 나무도 있다. 공기를 나눠 마시고, 길을 나눠 쓴다. 그렇게 달리다가 멈춰서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이 널려 있다. 이 글을 읽게 되는 사람들 모두가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곁에 가까이 있는 것들, 있어야 하는 것들,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그렇게 나는 달리다가 잠깐 순간에 머무른다. 달리다 마주친 모든 것과 이 글을 읽어준 당신에게 감사를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런중일기 끝내며>
안녕하세요. 오후 여섯시의 고양이의 강희재입니다. 이렇게 런중일기 마지막 화인 20회를 마치고 나서야 인사를 드립니다. 처음 호기롭게 시작했던 런중일기는 수요일마다 '참, 오늘이 연재하는 날이었지'하고 늘 떠올리게 해줘서 제가 글 쓰는 사람인 것을 매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런중일기를 시작하며 원래 기대했던 구독자 수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매주 제 글을 찾아주고 읽어주었던 독자님들께 고마운 마음이 더 큽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시간을 부러 써주는 노력을 함부로 여기지 않으려 지속해서 글을 쓰고 펴낼 것임을 다짐하게 되는 도전이었습니다. 마감일의 존재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임을 나 자신과 스크린 너머의 독자와의 약속임을 눈뜨게 해준 소중한 시간을 지난 5개월의 여정이었습니다. 어디서든 글을 쓰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런중일기를 쓰는 동안 경험과 발견, 기록과 일상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마친 뒤에도 달리다 멈추어 찾아내는 것에 열정을 가지겠습니다. 또 다른 글로 찾아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희재 올림.
2024년 6월 22일 토요일에 발견한 이야기.
※ 밀리로드에서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