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중일기 18. 새들은 그곳에서 온기를 나누고
겨울에는 한강 수위가 한참 내려간다. 이때만 볼 수 있는 작은 섬이 있다. 버스를 타고 양화대교 북단으로 향할 때 오른쪽 창을 보면 한강의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이다. 밤섬의 앞에 자리 잡은 이 섬은 밤섬의 일부라고 하기에도 조금 애매한 위치다. 확실히 밤섬은 아니다. 사람 스무 명이 서 있으면 꽉 찰까? 풀 무더기가 조금 자란 둔덕 같은 섬은 새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쉼터가 된다. 낮게 찰랑이는 강물과 쌓인 흙을 경계로 새들이 둘러앉아 있다.
가끔 양화대교를 지나갈 때면 이 작은 섬과 섬 위에 올라앉은 새를 보려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빼꼼히 돌려 차창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창가에 앉지 못할 때는 창을 가린 사람의 오른쪽, 왼쪽으로 내 고개가 삐죽 솟아나니 나를 보는 사람에게는 웃긴 풍경이겠다.
최근에 지하철 2호선을 타며 이 작은 섬을 구경하는 더 멋진 법을 알았다. 합정에서 당산으로 지날 때 당산 철교를 지나면서 이 작은 섬을 더 오랫동안 또렷하게, 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2호선을 탈 일이 거의 없었던 탓에 이런 진 구경을 뒤늦게서야 하게 된 것이었다.
이 섬은 밤섬 근처에 있는 섬으로 강 속의 퇴적물이 쌓여 생기는 하중도河中島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은 섬은 밤섬에 딸린 섬으로 밤섬에 다다르기 전 혹은 밤섬에서 나오면서 잠깐 쉬어갈 수 있는 섬이다. 비가 많이 올 때면 강물에 잠겨 보이지 않을 때도 있는 낮은 섬이다. 바람을 타고 온, 혹은 새의 배설물 속에서 살아남은 씨앗에서 자란 풀들이 섬의 머리에 듬성듬성 자란다.
이 섬은 오직 새들을 위한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사람의 흔적이 쉽사리 닿지 않는 흙무더기이기에 새들은 안심하고 휴식을 취한다. 일렁이는 강물이 닿을락 말락 한 곳에 웅크린 채 체온을 보존한다. 새들은 알을 부화하거나 새끼를 보호할 때 말고는 체온을 잘 나누지 않는 것 같다. 섬 위에 새들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조금 더 붙어 있으면 서로 따뜻할 텐데… 차창에 손가락을 대고 새들을 밀어서 서로 붙여본다. 내 욕심이다.
이 섬 위에 올라가 본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새들에게 매우 민폐이겠지만, 굳이 올라가야 한다면 그게 내가 되어서 새들에게 온기를 나누는, 온기를 기꺼이 빼앗기는 존재가 되고 싶다. 하지만 아무도 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옛날의 밤섬처럼 폭파하지도, 한강 정비 사업의 일환이랍시고 섬의 흙을 퍼내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오래도록 새들을 위한 작은 섬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이 작은 섬을 보면 내 마음도 그곳에 한 번씩 두게 된다. 닿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러게 되는 것 같다. 살이 에이는 바람을 견뎌줄 두툼한 깃털만 있다면 잔물결 일렁이는 곳에서 매일 한강의 노을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도 토닥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오늘 이 작은 섬에 이름을 붙여 본다. ‘위안의 섬’이라고.
올해는 마음먹고 양화대교를 직접 건너며 오랫동안 ‘위안의 섬'을 보겠다고 다짐해 본다. 할 일이 하나 늘었다. 나는 섬에 마음을 놓고, 새들은 내 마음에 앉아 쉬고.
2024년 1월 7일 일요일에 발견한 이야기.
※ 밀리로드에서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