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 Oct 09. 2024

달리는 폼에 대하여

런중일기 17. 곰같이 달리는 사람과 사슴같이 달리는 사람

달리기하다 보면 '풉!'하고 웃음이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다. 그건 재미난 폼으로 달리는 사람을 만났을 때다. 다른 사람을 보고 웃음이 터지는 것은 실례일 테니 들키지 않으려 조용히 시선을 피하며 웃는다. 이어폰 속에 재밌는 말이라도 듣고 있는 것처럼 계속 웃어 보인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우스꽝스럽다거나 가소롭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의 몸에서 이런 몸짓이 나올 수 있다니,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을 길에서 맞닥뜨렸기 때문에 터져 나오는 웃음이다. 


말하자면, 한강 길에서 곰 인형처럼 달리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푸우 같기도 하고, 패딩턴 같기도 해서 그들은 귀여운 쪽에 가깝다. 어떤 사람은 토끼처럼 통통 뛰듯이 달린다. 두 발로 함께 땅을 박차는 토끼 뜀이 이족보행에서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면 놀라움에 기반한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그러면 한강은 온갖 생물들이 뛰어노는, 모두 동물 인형 탈을 쓰고 달리는 세계로 돌변하는 것이다. 


덩치가 있어 정말 곰이 뛰는 것 같은 사람, 몸이 날렵하고 체공 시간이 길어서 사슴같이 뛰는 사람, 보폭이 짧아서 H라인 롱스커트를 입은 햄스터같이 뛰는 사람, 몸에 움직임이 거의 없어서 전봇대가 지나가는 것 같은 사람 등 러너들은 저마다 다양한 투명 코스튬을 입고 달린다. 잘 달리는, 달리기 폼이 좋은 사람도 동물을 연상케 하는 나의 상상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화 쥬라기월드에서 나왔던 티라노사우루스도 있고, 벨로시랩터와 트리케라톱스도 있다. 보폭이 넓은 러너는 마치 한 마리의 타조 같다. 


단순한 걷기의 움직임도 저마다의 특징이 있는데, 달리는 모습은 움직임이 더 커지니 개성이 더욱 드러난다. 달리는 폼이 무너진 사람을 보며 알려주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사람도 자신의 신발 밑창이 닳는 모양을 보며 자기의 습관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나친 참견은 저기 멀리 한강에 흘려보낸다. 




달리는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런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면 달리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달리기도 있다. 그건 일명 피비 달리기, 바로 드라마 프렌즈에서 피비 푸페이가 러닝하는 모습이다. 피비는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며 손과 발을 정말 마음대로 흔들며 목도리도마뱀처럼 뛴다. 피비는 이 에피소드 하나로 피비 캐릭터 그 자체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도 한 번씩 피비처럼 뛰고 싶을 때가 있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달리기라고 부를 순 없지만, 아무튼 즐겁다. 한강에서 누군가 허우적거리며 뛰고 있는 걸 본다면 그게 나인 줄 아시라. 



여전히 한강에서 달리는 사람을 보면 자세를 유심히 본다. 그 사람 속에 숨어 있는 귀여운 동물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으니까. 나의 달리는 폼은 어떨까. 가끔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는 뜀박질이고 싶다. 그러다 치타 같이 달리는 마라토너의 폼이 되고 싶달까.


2024년 6월 4일 화요일에 발견한 이야기.

※ 밀리로드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이전 16화 버드나무의 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