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시작과 끝
내 할매 이모들이 참 좋다. 큰이모님(85세)과 둘째이모가 날 특히나 예쁘게 봐주셔서 그런 것도 있을테다. 항상 날 보실때마다 “우리 현지는 참 예뻐. 예쁘고 착해”라고 말씀해주시면 전혀 그렇지 않은 내 모습을 아시는 엄마 아버지는 히죽히죽 웃으시고, 나 역시 양의 탈을 쓰고 있는 것같아 몸둘바를 모르겠지만 이제 엄마아빠가 웃으실 때 “왜 그래~ 나 이미지메이킹 잘하고 있는데~”와 같은 너스레를 떨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특히 우리 엄마와 여러모로 닮은 둘째이모는 내가 어렸을 때 등이 굽고 힘없는 걸음걸이로 걷자 어깨를 펴고 바르게 걸으라는 의미로 이렇게 말하셨다.
“현지야 핸드백 타악 매고 하이힐 탁 신고 이르케이르케 걸어봐” 그러고는 핸드백을 어깨에 매는시늉을 하시고 까치발로 걸어보이시는거다.
그 폼이 너무나도 재밌어 어린 내가 따라하면 나를 보시고는 꺄르르 웃으시는 모습이 기억에 희미하다. 그런 이모가 이제는 나이가 드셔서 치매가 오셨다니, 게다가 치아도 여럿 빠지셔서 위 앞니 하나, 밑에 앞니는 3-4개 없는 듯 했다. 이모의 두 딸들이 이모의 마스크가 내려가 치아가 보일때면 번갈아가며 나타나 이모 마스크를 입까지 다시 올려드리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과 그래도 이모가 좋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이모부가 떠나서 어쩌냐는 조문객의 말에 “이제 데이트상대 찾아야지~ㅎㅎ”하시는 83살 드신 할매 이모의 유머를 보이셨다. 이모의 유머는 유전으로 둘째 사촌언니에게까지 이어졌다. 이모가 “당신 먼저 가뿔면 나는 인자 어쩌요”하고 우시자 언니는 “엄마, 엄마 아직 안늦었어. 아빠 화장 아직 안했으니까 엄마도 마음에 드는 관하나 고를라요?”라고 하시고 이모는 또 히죽 웃으시며 “뭐어? 나보고 지금 죽으라는 소리냐?” “용케 알아들었소~?”하며 깔깔 웃으시는 거다.
이 가족의 유쾌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정말 본받고 싶었다. 비록 이모는 뒤에서 이모부 사진을 앞에두고 통곡하셨긴 하지만.
오늘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가 주어졌지만 미래사회에 평균수명이 길어질 경우 치매라는 질병을 어떻게 대해야 할것인가,
가족 중에 또는 우리 사회에 치매환자와 노인인구가 많아지면 우리는 어떻게 이를 포용해야 할까 등 평소에 고민하던 문제를 내 할매이모들을 통해 직면한 하루였기도 했고,
인생의 시작과 끝인 탄생과 죽음이라는 심오한 주제앞에서 죽음에 대해 또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도 했다.
가족의 죽음은 또 어떤 의미일까. 엄마가 친구에게 쓰는 카톡을 게눈으로 엿보니 “우리 엄마를 먼저 보내고 나니 그 다음 죽음은 덜 슬퍼”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이는 우리 외할머니를 산소에 묻던 날 40대인 엄마가 차 안에서 “이제 나는 고아야”라며 흐느껴 우시던 모습, 잔디로 된 묘뚜껑을 닫을때 “우리 엄마 이제 보고싶어서 어떡해“라며 우시고, 그런 엄마를 보며 울던 엄마 친구분들의 모습, 그리고 애써 무덤덤하게 해야할 일을 끝내야한다는 듯이 묘뚜껑을 닫으시던 큰삼촌의 모습이 한꺼번에 떠올라 아무도 모르게 차오르는 눈물을 닦았다.
내일 장례미사에서는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어야겠다. 또한 이모부뿐 아니라 이세상을 떠난 모든 이와, 단테의 신곡에서처럼 진짜 연옥이 있다면 연옥의 영혼도 천국으로 향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빌어야겠다.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친구가 교대근무에 지쳐 병원을 떠나며, 삶과 죽음은 백짓장 한장만큼 가까이 맞닿아 있음을 말해주었던 적이 있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있기에 우리는 삶에 대해 더 애착을 느끼고 더 잘 살아내고 싶고 그만큼 삶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삶에 대한 실망감도 크기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일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은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다.
자살이든 자연사든 어쨌든 죽으면 다 끝이니까 고인은 편할테지만 슬픔과 이별에 대한 마무리, 이로 인한 묵직한 감정은 결국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임을 다시 한번 생각한 하루였다. 그래서 이모부와 나는 살아생전에 많은 얘기를 나눌만큼 가깝진 않았지만, 살아있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다독이며 남은 인생을 잘 살아갈테니, 이모부는 그곳에서 정말 편안하고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