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매거진 한 권과 사진집
텅 빈 화면 혹은 텅 빈 종이 위에서 글을 시작하는데, 큰 망설임이나 저항감이 없다. 쓰기 시작하면 글이 글을 쓰는 느낌. 나의 에세이를 쓸 때도, 칼럼을 쓸 때도, 인터뷰 질문을 쓸 때도. 생각이 주렁주렁 활자로 나타난다.
사진이나 영상이 자극적이고 그런 플랫폼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시대와 다르게 나는 글에 애착이 간다. 읽는 것이든 쓰는 것이든.
고등학교때와 대학 때 각각 한 권의 책을 남겼다. 엄밀히 말하면 출판은 아니었고, 직접 만든 건축동아리의 연말매거진 ‘Architory’와 혼자 사진 찍으러 다닌 작업물의 결과물인 사진집 ‘여름시간들’
고등학교 건축동아리 연말매거진은 흥미반 수시준비반으로 준비했다. 비교과활동에 나 이런 활동 주체적으로 했어요- 하고 으쓱할 만한 것으로. 근데 다행히도 일련의 과정이 참 재밌었다. (기억의 미화가 아니고 실제로, 그리고 이 좋았던 기억이 대학 때 사진집을 만드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매거진에 실을 칼럼을 작성하고, 인터뷰할 건축가에게 콜드콜을 보내고, 처음 보는 건축사무소로 혼자 당당히도 인터뷰하러 가고, 동아리부원들 독서추천 정리하고, 무거운 dslr 들고 건축사진 찍으러 다니고, 편집하고, 제본하고- 이 많은 작업을 혼자 기획하고 완성했다. 힘든 것도 못 느낀 채 매일매일이 즐거웠고 뿌듯했다. 완성된 매거진은 동아리부원들과 인터뷰에 응하신 건축가분들 그리고 나의 부모님께 선물로 드렸다. 아직도 그 매거진은 본가에 소중히 모셔져 있다.
대학 때는 중간고사가 빨리 끝나거나, 방학이 되자마자 줄곧 해외여행을 갔는데 주로 혼자 떠났다. 혼자 새로운 곳을 하루종일 걸어 다니며 마주하는 모습들이 내 아이클라우드에 모두 담겨있다. 혼자라서 더욱 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때 나는 한창 사진에 빠져 있었다. 고사양의 사진기 없이 아이폰으로만 찍고 편집했다. 여행을 가서는 매일매일 블로그에 일기형식으로 사진과 글을 짤막하게 남겼는데,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니 이제껏 다닌 여행을 한 권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그럼 바로 해야지!
그 다음날 바로 사진편집에, 레이아웃 편집에 들어갔다. 제목은 ‘여름시간들’이었다. 겨울도 좋았지만, 1 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초여름에 떠나는 여행이 가장 설렜기 때문에. 그렇게 일주일을 몰입해 초안을 만들고 며칠간의 퇴고를 거쳐 마침내 나의 첫 사진집이 세상에 나왔다.
여러 번의 도쿄와 교토, 오사카, 뉴욕, 멜버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그라나다, 방콕-
도시이름만 떠올려도 그때의 여행이 생각나고, 사진집을 들춰보면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지금도 종종 그때가 그리울 때는 사진집을 편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런 추진력을 가지고 만들었을까 싶다. 역시 나인가. 현재도 나중에 뒤돌아보면 같은 생각을 할까. 아무래도 나는 글과 사진이 잘 맞는 것 같다.
대학 졸업하면서 개명해서 사진집 저자가 개명 전 이름으로 돼있다
건축매거진 아키토리 Architory는 본가에 있어 사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