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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혼 Feb 08. 2020

<이른 나이에 이른 '기레기'>Afraid?

주관적 외로움에 사로잡힌 이유

2017년까지 난 나에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동아리와 집단생활에서 나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젊은 꼰대', '아재', '진지충'이라는 별 것도 아닌 욕을 먹으면서 난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일주일에 소주 10병을 마시며 생활했다. 건강은 악화됐지만 버텨야 했기 때문에...


내가 '미친개'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자질을 하면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때 '갑'이라는 기득권을 조지려 할 때면 술을 먹고 일을 했다. 겁이 나고 무서워서 술을 먹고 미친 척, 강인한 척하며 일했다. 


강인해 보이기 위해 일부터 웃음 없는 척, 냉정한 척해버린 나머지 정말 냉정한 인간이 됐다. 다행이게도 지금의 내가 만족스럽다. 지금의 내가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썼을지도 모른다. 사회적인 삶에 익숙해진 나머지 '진짜 나'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또한 나의 모습이라며 인정하기로 했다. 너무 깊은 '자기 성찰'을 한다면 정말 내가 미쳐버릴까 봐. 


내가 더 냉정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2017년 10월 법정구속에서 풀려났을 때다. 그 누구도 나에게 축하를 해주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일부 지인들에게 말을 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매우 큰 배신감이 들었다는 주관적 토로다. 


왜 오지 않았냐


지금도 연락하는 한 형에게 이 같이 말했다. 내가 무서웠단다. 거리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형 왈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너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았기에 20대 초반부터 사회를 경험하는 분위기와 '굽신거림'에 대해 알지 못해. 특히나 법조계와 정치권 인사들에게 아부를 해야만 하는 내부 사정들에 알지 못해. 난 네가 그런 자만심으로 '나르시즘'에 젖어 있었을까 봐 나를 무시하진 않을까 했어"


맞다. 난 한 때 '나르시즘'에 젖어 타인을 업신여기곤 했다. 그래서 형에게 미안하다 하며 난 형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했던 소중한 사람에게 이 같은 말을 들으니 꽤나 충격적이었다. 내가 인간관계를 쓰레기 같이 관리했구나....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곳이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났다. 


내가 찾은 '꿈톡'이라는 강연 단체다. 2018년 1월 처음 갔던 곳이다.  

 

1987년생 강주원이라는 한 청년이 운영하는 강연에 처음 갔을 때의 난 느꼈다. 


"아 이곳은 내 모든 것들을 말해도 되겠구나...."


그렇게 주원이 형과의 첫 만남이 시작됐다. 이후로 내가 힘들 때마다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 강연이 열릴 때면 술을 먹고 형에게 갔다. 


"넌 어떻게 살았니?", "어제는 어땠어?", "괜찮아 혁진아. 좋은 하루였어 넌", "한 우물만 파지 않아도 돼. 실패한 삶이 어딨어. 넌 또 다른 역으로 가기 위해 널 성장시킨 거야"라며 충고와 조언 아닌 위로와 격려를 해줬다. 


그렇게 난 성장하다 한 동생을 만났다. 

  

이름은 최광빈 나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이다. 


근데 나와 너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묵묵히 해나가며 꿈을 이뤘단다. 


나 또한 묵묵히 달려 나가며 이룩하려 노력했다는 점이 너무 공감됐다. 대화를 하며 서로를 이해하다 보니 놀랍게도 이 친구가 대한민국 최연소 카레이서란다. 


광빈이에게 말했다. "야 너 XX 개멋있는데?"


광빈왈 "그렇게 알려하지 않아 형. 우린 아직 젊고 더 뛸 수 있잖아."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추는 동생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우린 2018년 11월 꿈톡에서 강연을 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도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우리도 여러분과 같다. 단지 무엇을 할지 확실히 알았을 뿐이다. 등의 여러 이야기들을 했다. 


그리웠던 과거를 말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렇게 '진짜 나'를 찾게 됐다. 폭풍 같은 지난해가 지나고 울음이 아닌 웃으며 꿈톡을 찾았다. 여러 형과 누나들이 안아주고 격려해줬다. 수고했어 잘했어 버텨줘서 고맙다. 


한 누나는 "너 자살하는 줄 알았다. 럭비공이라. 그래도 고생했다."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격려해주는 이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다. 울보인 나는 그렇게 또 아무 말 없이 울었다. 기쁘고 행복해서. 


소중한 사람이란 결과를 함께한 사람이 아니다. 과정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사람이다. 결과에 박수치는 이들은 버려라. 소중한 이가 아니다. 


소중한 사람은 멀리 있지 않다. 주위를 돌아보자. 너무 앞만 보고 달려 나가다 보면 내가 누군가를 외면하진 않았을까라고 생각해보자. 지나친 누군가가 당신에게 큰 힘이 되어줄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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