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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혼 Feb 12. 2020

<이른 나이에 이른 '기레기'>Scapegoat?

사익을 위한 타락...'희생양'이라 할 수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희생양은 ‘다른 사람의 이익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빼앗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단어는 사실 영어단어 scapegoat에서 온 단어로, 정확히 말하면 희생‘양’이 아니라 희생‘염소(goat)’다. 그런데 왜 하필 염소(goat)일까?


레위기(Leviticus) 16장에는 모세의 속죄 의식이 묘사되어 있다. 속죄일(Day of Atonement)은 과거 이스라엘의 종교 축제일 중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이 날 의식에 쓰이는 두 마리의 염소 중에서 제비뽑기를 통해 한 마리는 도살하여 그 피를 뿌리고, 다른 한 마리는 산채로 황야로 내쫓았다. 이때 황야로 내쫓는 염소는 상징적으로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쫓겨나는 것이다.


참고로 scape는 escape란 단어의 고어이다. 후대 학자들은 이것이 오역이란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1884년 개정판에는 scapegoat란 단어를 없애고 ‘Azazel’이란 원문의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랍비 문헌에 의하면 아사셀(Azazel)의 의미는 ‘azaz (=rugged, 바위투성이의)’ + ‘el(=strong, 강한)’으로, 염소를 추방하던 산의 이름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때론 타락한 천사의 이름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교 후배가 지난 2019년 8월 동아리 면접에서 나에게 물었다. "희생도 기쁘거나 좋을 수 있지 않나요?"


과거의 나였다면 어땠을까? "좋죠! 전 진짜 쓰레기처럼 살았거든요. 근데 도움이 된다면 어우... 영광이죠"라고 답했을 듯하다.


그러나 난 당시 "좋기만 할까요? 인간마다 버텨낼 수 있는 감정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선을 넘다 보면 아무리 성취감이 있다한들 무소용이더라고요. 제가 미쳐버립니다"


과거엔 질하게 술 먹으며 "내가 잘못했어. 나 때문에 죽었어. 나 때문에 힘든 거야"라고 울면 이젠 웃으며 "에라이 봐봐! 안 바뀌네"라며 그만둔다.


희생은 무엇일까? 어학사전에는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이나 가진 것 등을 바치거나 포기하는 것'이라고 적혀있다.


어학사전을 보고 문득 난 '기자질'을 하며 희생이라는 자기 파괴를 수도 없이 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난 사익을 취한 바도 있다. 그 사익은 무엇이었나?


이와 관련해 한 얘기를 해보겠다. 재계와 금융권을 취재하며 단독 보도를 할 뻔한 적이 있다.


우선 2017년 말 금융권 채용비리 상황을 말해야 될 것 같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우리은행의 채용비리 문제를 비판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 '빨대'가 있던 나는 '다른 은행도 채용비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Spiteful


금융그룹 K를 취재했다. 당시 회장의 비서실장 출신 A씨의 후배가 금감원 담당 국장급 간부라는 것을 알게 됐다. 노조 측에 확인해본 결과 "회장 라인 지인들을 면접에서 빼줬다"라는 증언까지 확보하고 금감원에서 회장 지인들의 자식들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으려 한 정황도 포착했다. 취재 이후 금감원 간부는 지방으로 좌천됐다. 그러나 데스크에 의해 기사를 '킬' 당했다. 문제는 또 광고였다. 한편 당시 K의 인사팀장과 관련자들은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집단이라는 데스크에 의해 '희생'됐다. 데스크의 목적은 돈이었다. "또 돈이냐 XX!!!"술을 마시며 욕을 퍼부었다. 그렇게 난 사익을 추구하는 '악의적' 희생양이 되어갔다.


내가 추구한 사익은 하나다.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까?'


회사에 여러 후배들이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으나 취재를 똑바로 하지 않는다고 '꼰대'짓을 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웃기다. 내가 지금 취재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기사를 잘 쓰는 것도 아니다.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역겨운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정기자들이 있었다. 대부분 나보다 선배였다. 당시 사회부 법조팀장 선배가 지적했다.


"너 벌써부터 그래?"


그러면 어떻게 풀어야 할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 술을 진탕 마시고 담배를 피워대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18년 초 난생처음 건강검진을 받아봤다.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비염과 천식이 있었는데 담배를 10년간 피우다 보니 폐에 구멍도 났다고 한다.  신체 나이가 30대 후반이라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잠시나마 담배를 끊었었다.


"난 나 자신에게도 악의적인 놈이었구나"


다른 일을 하려면 너 자신부터 챙기라는 잔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술 담배를 줄이고 운동을 시작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하고 있다. 하루에 팔 굽혀 펴기, 윗몸일으키기 100개와 5km 이상 걷기 등을 한다. 정말 귀찮고 하기가 싫다.


솔직히 말해 취재나 기사를 쓰는 것보다 하기 싫을 정도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운동을 하지 않았을 때와 생활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년까지 팝핀 학원도 다녔었다. 1년 정도 배웠다. 그래서 요즘 난 술을 마실 때면 무리해서 마시지 않는다. 또 춤을 배웠다면서 부심을 부리며 '라운지 바'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클럽은 시끄럽고 팝핀을 출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극혐 한다. 특히 난 클럽 블랙리스트가 돼버렸다. 강남권 클럽은 가고 싶어도 가지를 못한다.)


그렇게 '자기 관리'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건강은 물론이고 계획적인 삶을 살기로 했다. 균형 있는 삶을 사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요즘 들어서 느끼고 있는 것인데 여유가 가장 무섭다. 시작은 쉬운데 유지하는 것이 가장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균형 있는 삶을 살기 전의 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피해를 주었던 난 '희생양'이라 표현하기도 싫을 정도의 인간이었다. 지금도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조금 나은 인간? 이 됐다고 생각한다. 좋은 기자가 되기엔 아직 멀었으며 그러지도 못할 피조물이다.  


스트레스를 풀려 내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좋지 않은 것 같다. 나 자신에게 악의적인 행동이다. 타인에게 악의적인 행동을 하는 것보단 낫지만 앞으로의 나에게는 힘이 되어주진 않는다.


나와 타인에게 악의적인 인간이 되기보단 '악의'를 저지르지 않는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되고 싶다면서 밧줄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하루 일정을 짜고 사람을 만나며 게으름과 '갑질'을 하려는 나와 싸우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면 정말 더 아파할 것이 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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