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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Sep 25. 2017

아름답고도 쓸쓸한

영화 Her

  <Her>이 개봉한 2013년에 이 영화를 보았으면 조금 더 마음이 편했을까? 멜로 영화라고 하지만 순수한 사랑이야기로 감상하기에는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인공지능 OS '사만다'와 이혼의 아픔을 겪고 있는 '테오도르'가 가까워지고 연인으로 발전하는 모습은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꾸만 잔잔한 사랑 이야기보다는 가까운 미래를 예견한 SF영화처럼 다가왔다. 아마 4년 전보다 영화 속 미래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사만다와 같은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얘기가 아니다. 인공지능 스피커 '카카오 미니'의 예약판매가 순식간에 매진되었듯이 인공지능 기술은 날로 발달하고 있고 조금씩 우리 삶으로 들어오고 있다. 다만 우리 생활 속의 인공지능과 사만다가 크게 다른 점은 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사만다는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끼며 스스로를 하나의 존재로 인식한다. 인간과 두드러지는 차이는 육체가 없다는 것뿐이고, 또 다른 차이가 있다면 정보 처리 속도나 저장성과 같이 컴퓨터가 인간보다 뛰어난 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사만다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테오도르와 같이 타인에게 상처받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역할을 인공지능에게 맡길 수 있다면 그런 존재를 탄생시켜도 되는 것일까?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사랑은 순수하고 아름다웠지만, 인간을 사랑할 수 있고 함께 하고 싶은 감정을 느끼는데 육체가 없음에 괴로워해야 할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과연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기를 원하는가?


 소프트웨어에 인간의 감정체계를 완전히 재현할 정도의 기술력이 갖추어졌을 때는, 그에 걸맞게 인간의 육체를 재현한 하드웨어까지 구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재난에서 사람을 구하는 로봇을 만드는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님의 강의를 생각해보면 로봇이 인간처럼 움직이는 수준까지는 아마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실 잘 모르는 분야이기도 하니 무식이 탄로 나기 전에 관련된 이야기는 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하드웨어까지 갖추어진 사만다라고 해도 그 탄생이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 편히 털어놓고 위로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에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타인을 위로하는 지극히 인간다운 역할을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저 편리하기만 하다면 인공지능이 마땅히 인간으로서 감내해야 할 일들을 대신하게 만들어도 되는 것 일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인공지능의 발달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충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Her>는 조금 더 힘을 빼고 보는 것이 아름다움과 잔잔함 감동을 느끼기에 좋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꼭 이렇게 봐야 해"라는 의견은, 별로 듣고 싶진 않다. 항상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으려 애쓰거나 좋고 나쁘다는 평가를 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자유롭게 가져올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물론 이 영화에서 진정으로 좋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이 글에 많이 담지 못하기도 했다.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두 남녀의 사랑과 순수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배워가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모습은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테오도르의 시선과 마음을 공유하게 된다. 가슴이 먹먹해지기는 영화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감성들에 대해서는 느끼는 바에 비해할 말이 많지 않다.


 이 영화는 마음을 울리며 깊이 공감하게 하는 대사가 정말 많다. 특히나 테오도르가 대신 써주는 편지들은 감동적인 문장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사랑이 느껴졌던, 가장 마음에 들었던 대사로 이 글을 끝내야겠다. 물론 서툴더라도 편지는 직접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사랑해요.
당신의 옆에서 당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서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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