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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Oct 07. 2017

둘만의 세계

베티블루 37.2 (Betty Blue, 1986)

 예전에 프랑스 영화에 관한 교양강의를 들을 때 이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연휴 중 홀로 보내는 시간이 적적해 무슨 영화를 볼까 하다가 문득 <베티블루>가 떠 올랐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조용한 새벽, 기분이 가라앉아 영화를 찾을 때 문득 생각나는 영화. 왜 그런지 이유를 말하기도 힘들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다.


 두 주인공 베티(베아트리체 달)와 조르그(장 위그 앙글라드)의 사랑이 항상 위태로움 속에 있기에 찰나의 행복한 순간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베티와 조르그, 둘은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영상미와 아무리 반복되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과 함께 다시 나를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로 초대했다. 그 세계는 환희와 슬픔, 광기와 초라함, 두 남녀의 아름다운 모습과 사랑으로 포장하기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들 같은 대조적인 것들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세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그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경계를 마음껏 넘나들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베티블루 37.2 스틸컷


아래는 영화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베티의 정열과 광기, 그리고 우울함

 베티는 웬만한 히어로물의 주인공들 보다도 오래 기억에 남을 캐릭터다. 보고만 있어도 그 변덕을 감당하기가 힘든데 끝까지 그녀를 안으려 했던 조르그의 마음은 존경스러울 정도다. 갑자기 맨 손으로 유리를 깨고 집을 뛰쳐나가는 베티는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단 일주일도 함께하기 힘든 여자다.


 조르그는 어떻게 베티의 그런 광기 어린 모습까지 사랑하게 되었을까? 베티의 행동들은 지나치게 과격하고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하지만 고약한 건물주(?)에게 꼼짝 못 하는 조르그보다 그 얄미운 사람을 시원하게 혼내주는 베티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들기도 한다. 기분이 상하면 집안의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내던지는 베티를 보면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들 조차 아까워 쉽게 버리지 못하는 우리는 통쾌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아마 조르그는 베티가 없었다면 작가라는 꿈에 도전하기를 끝까지 주저하면서 훨씬 오래 배관공 일을 하며 얹혀사는 생활을 했을 것이다. 꿈과는 거리가 멀지만 최소한 의식주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 생활을 작가라는 꿈에 도전하기 위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베티는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조르그의 글을 읽은 다음 날 방갈로를 불태워버렸다. 조르그가 베티의 그런 지나치게 충동적인 모습마저 매력으로 느끼는 것은, 관객이 베티로 인해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끼듯 자신이 이런저런 걱정을 앞세워 억누르고 있는 욕망들을 그녀는 거침없이 실현해버리기 때문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베티는 매사에 화끈한 모습을 보이는 듯 하지만, 우울함은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라다닌다. 베티의 우울함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베티의 성격으로부터 온다. 그녀의 충동적인 행동들이 항상 원하는 결과를 불러올 만큼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다. 쿨하게 방갈로를 불태우고 도시로 나왔지만 출판사는 조르그의 글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아이를 가졌다고 생각했던 베티는 확실한 결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한 껏 기대하고 행복함마저 느끼지만, 출판과 마찬가지로 그 기대는 여지없이 부서지고 만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베티는 더욱 우울해지고 미쳐 간다. 조르그의 말처럼 베티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원하기에 그 바람들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대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하면서 마침내 베티의 광기는 절정에 달해 자신의 눈을 도려내기에 이른다. 베티의 거침없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그런 결말은 한 층 더 쓸쓸하게 다가온다.



견딜 수 없는 것들

 베티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세상이 한 사람의 기대대로 흘러갈 수 없음에도 베티에게 뜻대로 되지 않는 상의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는 것들이었다. 조르그의 글을 비꼬는 출판사 직원을, 괜히 진상을 부리는 손님을 가만 둘 수 없었다. 친구의 집에 얹혀살지만 친구의 죽은 어머니가 쓰던 매트리스는 한밤 중이라도 갖다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가장 큰 기쁨이었던 임신마저 뜻대로 되지 않자 더 이상 세상을 견딜 수 없었던 베티는 세상을 파괴할 수 없으니 스스로를 파괴해버린다.


  조르그는 원래 참을성이 없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베티를 만나고 점점 변해간다. 조그에게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은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베티의 불행만큼은 견디기 힘들었다. 조르그는 베티 밖에 몰랐고 베티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들을 증오했다. 그래서 둘은 서로 밖에 몰랐고 자신들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타인에게 피해를 미치는 행동도 피하지 않는다. 둘의 모습은 사랑의 완전한 몰입이지만 베티가 미쳐갈수록 점점 도를 넘는 그들의 행동이 이기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조르그는 스스로의 글이 출판되는 것을 자신보다 더욱 원했던 베티에게 마침내 그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었지만 베티는 이미 부서지고 망가져서 엉망이 되어버렸다. 간절한 마음으로 조르그의 글을 타이핑했던 베티가 없었더라면 의 글은 출판되지 못했을 것이다. 베티는 조그 스스로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믿음을 그에게 주었다. 그렇기에 마침내 그 결실이 이루어졌을 때 너무나 기뻐할 베티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지만, 이미 부서지고 망가져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하는 베티의 모습은 더없이 쓸쓸하다.


 조르그는 미쳐가는 베티의 발작적인 행동들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그녀를 사랑했다. 조르그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정열적인 모습을 잃고 정신 병원의 침대에 묶인 채 놓여있는 베티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조금 더 인내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베티가 조금만 더 참고 견뎠더라면 출판사의 전화를 듣고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고 둘의 결말은 그렇게 우울하고 쓸쓸해지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베티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모든 것이 변해야 하고 이 영화는 별로 얘기할 것도 없는 두 사람의 사랑 얘기를 다룬 밋밋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베티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만 고쳐버릴 수는 없다. 발랄함과 정열, 광기와 우울함을 포함한 그 모든 것이 베티의 모습이고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조르그가 그녀를 사랑한 방식이었다.




베티블루 37.2 스틸컷
"인생은 허무해, 남는 것은 사진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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