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희 Jan 10. 2018

존 내쉬를 만나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자식이 생기면 이 영화를 꼭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다가 있지도 않은 자식 생각이 난 것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진정성 있는 학문의 자세와 사랑의 참된 의미를 볼 수 있고, 나아가 그런 것들이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가 까지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좋은 영화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대해서는 존 내쉬의 이야기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내쉬 균형과 게임이론이라면 산업조직론 강의를 들으며 머리를 싸매고 공부했던 적이 있었기에, 과연 그 내쉬 균형을 만들어 노벨 경제학상까지 수상했다는 천재의 일대기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존 내쉬가 궁금해서 보게 된 <뷰티풀 마인드>는 생각과 다르게 스릴러 영화 못지않은 긴장감과 웬만한 로맨스 영화에서도 느끼기 힘든 감동을 안겨주었다. 처음에 품었던 기대가 충족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루할 틈이 없었던 두 시간이었다.


 초반부엔 괴짜 천재의 대학생활이 흥미로웠다. 파티에서 친구들과 한 예쁘장한 여자를 지켜보다가 내쉬균형 논문이 탄생하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애덤 스미스의 이론(개인의 이익 추구가 사회적으로도 가장 큰 부를 창출한다)에 반기를 드는 내쉬 균형이 그렇게 탄생했다니, 역시나 영감이라는 것은 준비된 자에게는 삶의 어느 곳에서든 발견할 수 있는 것인가 보다. 잠시 그 장면을 기억해보자면, 여러 명의 남자가 각자가 원하는 데로 가장 예쁜 한 명의 여성에게 대시하여 경쟁하는 것보다는 골고루 다른 여성에게로 가는 것이 전체 만족이 더 크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중반부엔 내쉬가 환각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꽤 충격적이었다. 애초에 그런 장르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순간 뒤통수를 맞았다. 기괴하게 까지 보이는 신문 암호해독에 대한 집착은 섬뜩한 느낌을 주기도 했고, 환각과 가족을 두고 갈등을 일으키는 내쉬를 보며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픽션이 아니라 실화라는 점이 더욱 흥미를 돋웠다.

<뷰티풀 마인드> 스틸 컷, 존 내쉬(러셀 크로우)

 후반부에는 여러 번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알리샤가 점점 미쳐가는 내쉬의 곁에 남아 함께 이겨낼 것을 약속하는 장면, 내쉬가 교수들로부터 만년필을 받는 장면, 그리고 마침내 노벨 경제학을 수상하는 장면까지,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인간 승리'그 자체였다.


 만약 영화 속 존 내쉬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단지 픽션이었다면 <뷰티풀 마인드>는 현실성 없는 영화로 취급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수십 년 동안 심각한 정신분열증을 겪으며 환상 속에 살던 남자가 평생에 걸쳐 결국 그 병을 이겨내고,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는 이야기는 현실이라기보단 동화 같지 않은가. 그런데 현실성이 없는 것은 존 내쉬뿐만이 아니다. 내쉬에 대한 알리샤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신분열증을 극복하는 것도 현실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화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뷰티풀 마인드>가 한 천재 수학자의 얘기라고 알고 있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는 그것이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존 내쉬만으로 탄생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알리샤는 자신과 아이의 신변이 위험하다고 느껴질 만큼 존의 증상이 심각해져 갈 때도, 그녀는 끝까지 떠나지 않고 존의 투병을 함께했다. 알리샤가 없었다면 아마 존은 정신분열증을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존이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람들이 환상임을 인정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알리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내쉬는 노벨경제학상 수감 소감에서 그녀에 대한 감사를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

난 당신 덕분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당신은 내 존재의 이유이며, 내 이유는 당신뿐이에요.

 가끔은 내쉬의 학문적 집착은 병적으로 심각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몸과 뇌가 망가져 가는 순간에도 결코 탐구하기를 멈추지 않는 모습은 한 순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결국 무언가 하나에 미쳤다고 보일 정도의 집념을 가진 사람만이 위대한 업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존 내쉬와 아내 알리샤는 지난 2015년 6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생의 가장 힘든 순간을 함께 견뎌냈던 두 사람은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했다. 찬란한 했지만 시련도 많은 생을 사셨던 두 분께서 이제는 함께 평안히 쉬시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나 홀로 기차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