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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화 Freshorange Oct 18. 2023

짧아서 아쉬운 뉴요커로서의 첫날

뉴욕!!!! 딱 기다려, 내가 간다

부제-뒤늦은 미국 여행기 10- 이제부터 온전히 내힘으로, 아니 우리 힘으로 열흘을....


 우리가 뉴욕, 아니 사실은 뉴저지에서 머물렀던 호텔은 맨해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맨해튼의 숙소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패키지 여행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 미국에 먼저 와있던 딸에게 우리가 미국에 도착한 첫날 만나려고 호텔로 찾아오라고 주소를 보냈더니 맨해튼에서 오려면 버스와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고 두 시간 이상은 와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일행과 떨어져 맨해튼 숙소로 갈 일이 걱정이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도 심란스럽고 택시를 타자니 요금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행과 함께 JFK 공항으로 가서 그곳에서 교통편을 알아보기로 했다. 공항에서 맨해튼까지는 바로 가는 버스도 있고 택시비도 여기서보다는 나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일정을 알게 된 여행사에서 맨해튼에 살면서 마침 그곳에 볼일을 보러 온 직원을 소개해 주었다. 어차피 가는 길이라며 숙소 주소를 알려주면 우리를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사실 패키지 여행상품을 선택해서 열흘 동안 별 고민 없이 여행을 하다가 나머지 10일을 자유일정으로 여행을 하려니 설레기도 했지만 좀 심란하기도 했다. 내가 20년 전에 와본 곳이기도 하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된다는 이유로 남편은 아무 의견도 제시하지 않고 '와이프 패키지'여행에 동참할 계획이었다. 기존 숙소에서 맨해튼의 숙소로 이동하는 것부터 어려움에 봉착했는데 그런 배려를 받을 수 있다니 앞으로의 여행에 서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일이 쉽게 풀린다고 생각하자 아침 식사도 꿀맛이었다. 특별히 팁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식당에서 흑인 직원분이 부지런히 다니면서 테이블도 치우고 모자란 음식도 다시 채우길래 첫날 1달러 지폐를 놓고 왔는데 우리를 기억했는지 요구르트며 과일을 우리 테이블에 직접 가져다 주었다.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내가 나름 10일 더 체류하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았나 보다. 아주 사소하게라도 우리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면서 마음을 다스리게 되니 말이다. 

 우리를 데리고 갈 직원분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호텔을 출발했다. 맨해튼으로 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다른 길을 선택한 지인들에게 연락을 해보는 것 같더니 아무 데나 가도 기본 두 시간은 걸린다고 했다. 어제의 경험도 있고 해서 느긋하게 맘을 먹기로 했다.

 호텔에서 7시 30분쯤 출발했는데 숙소에 오니 10시였다. 맨해튼에서의 숙소는 한인 자매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다. 오후 3시에 체크인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가방만 맡겨 놓고 나왔다. 호텔보단 불편할 것 같았지만 열흘 동안 매 끼니를 사 먹을 수만은 없어서 가끔 장 봐서 해먹을 수 있을까 싶어 선택했다. 남편은 썩 맘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와이프 패키지를 선택했으니 받아들이겠지 뭐. 혹시 불편하거나 맘에 들지 않는 게 생기면 '호텔이 낫지, 이게 뭐야'이런 말만 안 해도 감사할 일이다. 

 숙소가 10번 Avneue 근처여서 그 길을 따라 쭉 걸어보기로 했다. 

맨해튼의 주소는 동서로 길게 난 도로인 Street와 남북 Avenue로 구분하는 데 예를 들어 410W/10Ave 이런 식으로 주소를 알면 대충 어딘지 찾아갈 수가 있는 장점이 있다. 나처럼 방향치, 길치들도 무난하게 찾을 수 있다. 더구나 구글맵을 이용하면 웬만한 곳은 어디쯤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아무 기대 없이 갔는데 걷다 보니 미국에 온 첫날 잠깐 들러서 열 발자국쯤 걸어봤던 하이라인 파크가 나왔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오래전 뉴욕에서 산업이 폭발적으로 부흥하던 시기에 화물 운송을 위한 고가철도가 있었다고 한다. 1934년에 완성된 이 고가철도는 총 2.4km로 도축장이 있던 미트패킹 지역에서 첼시를 지나 북쪽 허드슨 야즈에서 끝나는데 건물과 도심을 관통했다고 한다. 이후 자동차와 항공이 발달하자 철도는 쇠락했고 1980년에 폐선이 된 후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고 한다. 이후 30년간 사람의 발길은 끊기고 녹슨 채로 방치된 구조물과 무성한 잡초로 인해 철도 라인을 따라 주변 지역이 우범 지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러다 90년대에 첼시가 인기를 얻자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고가철도를 없애고 빌딩을 지으려고 지역주민들을 초대해 공청회를 열었다. 하마터면 역사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고가철도는 조슈아 데이비드와 로버트 해먼드라는 두 청년이 공청회에 참석한 덕분에 오늘날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두 청년은 하이라인이 뉴욕 역사의 산 증인이고 평지와 다르게 뉴욕 시내를 공중에서 조망하며 산책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라는 가치를 발견하고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고가철도 철거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다.  토지주와의 소송, 뉴욕시 공무원, 철도회사, 토지주, 건물주 등등 많은 단체, 사람과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오늘날과 같은 멋진 하이라인 파크가 탄생할 수 있었다. 

 첫날 말 그대로 점만 찍은 하이라인 파크에 다시 오니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시간 여유를 두고 천천히 산책하면서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얘기도 하고 삼십 년 넘게 잘 살아온 우리를 칭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런 여유와 자유를 즐기려고 자유여행들을 하는구나 싶었다.  

 산책하다 배꼽 시계가 울려서 보니 점심시간이다. 아, 맞다. 이제 뭘 어디서 먹을지도 우리가 생각하고 정해야지. 아직은 행복한 고민의 시간이다. 하이라인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첼시마켓으로 갔다. 멕시코식, 가벼은 패스트푸드점, 스테이크집 등 많은 먹거리들이 있었는데 중간에서 한국 음식점을 발견했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던가, 미국 한복판에서 발견한 한국 음식점은 왜 이렇게 반갑던지. 요리사와 서빙하는 직원은 한국인이 아닌 것 같은데 주인이 한국인인가? 메뉴판을 보니 다양한 메뉴가 있었지만 제일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라면 요리를 선택했다. 하지만 실패였다.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지는 모르지만 한 번도 맛보지 않은 저세상 맛이었다. 거의 이만 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산 음식이어서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배고픈 것보다 낫지 싶은 생각에 먹긴 먹었다. 한국에 가면 라면을 맛있게 끓여서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먹어야지라고 생각하니 좀 위로가 된다. 

 걷고 먹다 보니 어느새 체크인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갔던 길을 되돌아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부터의 강행군을 대비해 오늘은 쉬고 싶었지만 3월에 이미 이곳에 와 있던 딸아이를 수업 끝나고 만나기로 했다. 오후에 찾아온 딸에게 먹고 싶은 것을 사준다고 했더니 삼겹살을 사달라고 했다. 먹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서 못먹었다면서. 30분쯤 걸어서 한인타운에 있는 고깃집에 갔다. 대낮에 타임스퀘어를 지나 맨해튼을 걷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뉴요커가 된 듯 하다. 

 오랫만에 만난 딸내미보고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으라 했더니 아뿔싸, 셋이 먹었는데 20만원이 넘게 나왔다. 뉴욕 물가가 장난 아니라더니 셋이 삼겹살좀 먹었다고 20만원이라니 뉴욕을 너무 쉽게 봤다. 내일부터 열흘, 사이비 뉴요커가 되어 맨해튼을 휘젓고 다닐 예정인데 큰일났다. 물가가 너무 비싸다. 그래도 언제 우리가 뉴욕에 또 오겠어. 오늘만 살고 말자. 내일은 내일, 일단 쓰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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