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기자때문이야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글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말을 하면 주변에서는 보통 흠칫 놀란다. 내가 항상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고백이 사실이라면 나는 매일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는 아주 불행한 사람이 되는 셈이니 말이다.
'글 쓰는 게 싫다'로 표현해 왔지만, '글 쓰는 일'이 싫을 뿐 '글 쓰는 행위' 자체는 그냥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글로 돈을 버는 행위가 힘들고 지칠 뿐.
글 쓰는 것이 싫은 이유를 생각해보니 문득 내가 느끼는 감정이 달라졌다는 걸 알게 됐다. 난 글을 쓰면서 혹은 읽으면서 항상 '불편함'을 느낀다. 앞 문장에서 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런 번역투의 말투만 봐도 그렇다. 그냥 글을 써 내려가면 되는데 매번 '아 이건 번역투라 좀..', '아 이건 주어가 없어서 좀...' 항상 '불편함'이 몰려온다. 방금도 아차 싶었지만 그냥 써 내려갔다. 이곳은 그런 곳이니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글이 재밌고 쉽게 써질 리가.
근데(그런데 아니고). 그래서 나는 여기에 글을 쓰기로 했다. 글을 쓰는 행위를 좋아하지만 불편함을 참지 못해 나를 얽매고 있는 '글'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바뀌고 싶다. 내가 이제 기자도 아닌데! 번역투니 피동문이니, 주어가 없느니 이런 거 그만 생각하고 좀 편하게 쓰고 싶다.
'좀 편하게 쓰고 싶다' 같은 문장 반복해도 괜찮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데! 이건 기사가 아니지 않나? 내가 그렇게 쓰고 싶으니깐. 난 두 번, 세 번씩 쓸 거다.(매우 초딩같군)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말이다. 이곳은 내가 글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을 깨는 장이 될 거다. 앞으로 눈치 보지 않고 내 생각을 써 내려가는 이곳을 응원해줬으면 한다.(누구일지는 모르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포함한 여럿에게 부탁드린다)
나는 언제부터 글을 썼나..? 처음부터 글이 싫지는 않았을 거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초등학교 2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당시 담임이 문예부 선생님이었다. 담임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문예부에 들어갔고 운문을 쓰다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 각종 글쓰기 대회에 나가 상을 꽤 많이 받았다. 받았던 상 중 레벨이 높았던 것은 전국 대회 은상정도였다. 그 이후부터 글쓰기와 관련된 것들과 엮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내가 글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기자가 돼있었다. 눈떠보니 내가 기자..? 이런 느낌이랄까. 항상 그 속에서는 치열하게 난 뭘 잘하지, 뭘 하고 살아야 하지를 고민했는데 결국은 글로 이어진 느낌이었다.
기자를 할 때도 집에 가면 항상 심각한 표정으로 자판을 두들겨댔다. 매분 매초가 마감 시간이었고 주말에는 어김없이 기획기사를 써야 했다. 퇴사한 이후에도 집에서 나는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람이 됐다. '난 글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구나'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글 쓰는 게 재밌었던 건 언론고시라고도 불리는 '언시'생활을 할 때 쓰던 작문시간이었다. 논술과 작문을 연습했는데, 논술도 나름 재밌었는데 알고 있는 지식을 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달달 외우고 이리저리 지식들을 엮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에 반해 작문은 재밌었다. 내가 좋아하던 미드 '블랙미러'를 짧은 버전으로 쓴다고 생각하고 사회비판적인 작문을 주로 썼다.
스터디원들 사이에서 평도 좋았다. 나중에 꼭 이 주제를 확장해서 소설을 써보라고 응원해주기도 했다. 그랬다. 내가 글을 좋아할 때도 있었다! 내 손에서 미드 한편이 뚝딱 만들어지는 듯한 재밌는 경험도 했다. 그렇게 재밌게 글을 쓰다 기자가 됐고 좀 과장하자면 글을 '혐오'하는 수준까지 가버렸다.
'후.. 이게 다 기자 때문이구나?'는 판단의 오류겠지만.
이제 탈기자 했으니, 다시 내 손으로 미드 뚝딱 만들어보고 싶다. '한국판 블랙미러' 작가 켈리오를 기대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