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쯤 자고 있는데 둘째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잠에 아직 취해 있는 상태로 끙끙 앓듯이 울어댔다. 아이들이 가끔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해서 우는 그런 본능적인 울음이었다. 두 시간 가까이 야근을 하고, 아내가 입덧으로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있어서 밤에 반찬 몇 개를 만들어 놓고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었던 터라 잠을 잘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솔직해지자면 짜증이 먼저 났다. 아이 옆에 자고 있던 아내가 먼저 눈을 뜨고 아이를 달래고 있었는데 아이는 울음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다리가 아픈 것 같았다. 허벅지에 힘을 계속 주고 운다고 하는데, 마음속으로는 아내가 토닥여주면 아이가 빨리 진정하고 다시 잠들기를 바랐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결국 나도 약간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로 일어났다. 아내 옆에 앉아서 아내가 주무르고 있는 다리의 반댓쪽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점점 나아지는지 이내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 겨우 잠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리가 꽤나 아파서 앓는 소리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최대한 조용히 이 상황이 정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고, 그렇게 되지 않아서 인상이 써졌는데, 다리를 주물러주다 보니 미안함이 밀려왔다. 임신한 채로 자기 몸 돌보기도 힘들어하는 중인 아내가 깨서 잠을 설치는 것도 그렇고 내 몸뚱이가 피곤해서 쉽게 진정하지 못하는 아이가 왠지 야속했지만, 사실 가장 괴로운 건 아들놈이었을 것이다. 나는 왜 이 상황에서 아이가 엄마 아빠를 배려해서 참아주길 바란 걸까? 부끄러웠다.
앞으로 자주 겪게 될 상황이다. 뱃속의 아기가 태어나면 한 1년간은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인데,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를 덜하고 있었나 보다. 새벽에 갓난아기는 깨서 보챌 것이고 아내도 나도 밤잠을 계속 설치는 날이 지속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때라고 지금과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 태도가 많이 다를까? 아기를 돌보는 것은 기본이고, 갓난쟁이 동생이 있다고 해서 첫째와 둘째가 갑자기 어른스럽게 상황을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어른인 우리가 인내하고 희생해서 아이 셋을 같이 키워낼 뿐인데, 뭔가 비현실적인 바람을 내가 은연중에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따지고 보면 셋째 아이를 더 바랐던 건 나이다. 감사하게도 아내는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허락을 해주었고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감사하게도 셋째가 생겼다. 상황이 바뀌면 누구나 언젠가 적응은 하게 될 테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상황을 수월하게, 시행착오를 조금 덜 겪으면서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불필요한 마음의 생체기를 아이들이나 아내에게 남기지 않고 지나갈 확률이 조금은 높아질 것이다. 둘째 아이를 통해 역시나 아직 내가 부족함을 느껴버렸다. 셋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체력과 더 어른스러운 마음을 단련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