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공부는 교실 밖에서
공부. 이 단어만 들어도 한숨이 푹 나오니? 아무런 걱정도 고민도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사람이 8살이 되면 학교에 가게 되면서 공부라는 게 갑자기 튀어나와 너희를 괴롭히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매일 등교해서 학교생활 잘하고 돌아와 주는 것도 너무 고맙다. 우리 둘째, 셋째도 유치원, 어린이집 잘 다녀줘서 고맙고. 아빠도 학교 가서 공부하는 게 즐겁지 만은 않았어서 잘해주는 너희가 기특하네.
공부 왜 해야 돼?
공부는 도대체 왜 해야 하는 걸까?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1차적인 이유라고 생각해. 보호라고? 무술이나 호신술도 아닌데 웬 보호? 아빠가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 너무 당연한 것들이 있어. 예를 들어 인사나 감사를 표시하는 간단한 예의범절 이라던지, 구구단 같은 것들, 글로 편지를 써서 생각을 전달하는 이런 것들. 지금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이 모든 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터득한 것들 이더라.
예절을 모르면 다른 사람들과 자주 싸우게 될 수 있고, 구구단을 모르면 나중에 큰돈을 손해 볼 수도 있고, 생각을 표현할 줄 모르면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얘기를 못해서 피해를 보는 일이 생길지도 몰라. 성인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기본적인 예의를 배우지 못해서 피해를 주는 사람도 있다는 걸 너희도 더 크면 알게 될 거야. 너희가 엄마 아빠가 뭔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때 짜증만 내거나 폭력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도 나름 교육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거야.
그러면 딱 그 정도 단순한 것만 배우고 말면 되지 왜 관심도 없는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이런 것들을 배우냐고? 아빠는 있잖아, 아이들의 머릿속은 반짝반짝 꿈동산일 줄 알았어. 아빠도 아빠가 어렸을 때 가슴속이 꿈으로 가득했었는데, 어른들이 맨날 공부만 하고 딴짓은 못하게 몰아가서 그런 꿈이 다 연기처럼 흩어진 줄 알았거든. 아닌 것 같아. 아이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너희를 키우면서 보니 아이들도 생각보다 하고 싶은 게 없더라고. 꿈을 꾸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보다는 본능적인 선택을 하고, 힘이 안 드는 걸 선호하는 건 아이나 어른이나 똑같더라. 일부러 계속해서 꿈에 대해 물어보고 꿈꾸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더라고.
또, 내가 너희의 아빠지만 너희와 소통하고 지낸 기간이 오래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워서, 아직 너희의 관심과 취향, 성향들이 수수께끼처럼 감춰져 있어. 그래서 저희가 평소 생활하면서 관심을 같은 거라던지, 학교나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들에 보이는 반응을 보고 너희를 파악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아빠는 너희가 배우는, 어쩌면 지금으로서는 왜 굳이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그것들을 너희에 대해 알기 위해 활용하는 것 같아. 그게 너희 자신에게도 마찬가지 일거야. “나 왜 영어가 잘하고 싶지?” “나 왜 우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지?” 이런 질문들에 논리적으로 답할 수는 없을 거야. 나도 모르던 나를 발견한 것일 뿐이야.
진짜 공부는 책상 밖에서
공부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보통은 자연스레 학교 교실에 책상에 앉아서 앞에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거나, 시험을 보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지 않을까? 물론 그것도 형식화된 공부의 모양이지만 너네는 학교 밖에서도 공부를 하고 있어. 태권도나 피아노를 다니는 것도 공부지.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면서 뭘 할지 정하고, 규칙도 만들고 다투다가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이 모든 과정이 다 공부야. 공부라고 해서 다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재미가 있어서 공부가 아닌 것도 아니야.
사실 아빠는 너희가 책상에서 하는 공부보다 책상 밖의 공부를 더 잘했으면 좋겠어. 우리 딸이 4학년이 되고 나서 슬슬 시험을 하나 둘 보는데 점수를 잘 받아오더라. 그 덕분에 아빠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학교 성적이 안 좋으면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했으려나?) 학교 교과 과목을 다 잘하지는 못할 수도 있어. 적성과 관심의 정도 차이가 분명히 있으니까. 대신 관심이 있는 거는 꼭 깊이 파보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 덕질이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거의 집착스럽다 싶을 정도로 관심을 갖는 거거든. 나나 다른 사람에게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라면 좋다고 생각해. 그게 진짜 나에게 맞는 공부이기도 하고.
물론, 기본적으로 학교 공부를 잘해주는 것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 막연히 공부를 잘해서 기분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그만큼 수업 시간에 딴짓하지 않고 수업을 잘 듣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너무 좋은 태도라고 생각해.
무조건 빨리, 오래
아빠 때는 대학을 가는 건 거의 불문율에 가까웠어. 어찌 보면 12년이라는 초중고 시절이 대학 입학이라는 결승선을 향해서 달려온 길이었던 것 같아. 딱히 내 의사로 그 경주에 참여한 건 아닌데, 시스템이 그렇더라. 지금 같아서는 아빠는 너희는 꼭 그 길을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이 길이 성공과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더라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의 엄청난 편리성은 있다고 생각해.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에 갔다고 하면 너희는 어디 가서 너희가 똑똑하다는 걸 직접 검증할 필요는 없을 거야. “저 서울대 나왔습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쟤는 똑똑한 애구나라고 인정은 할 수 있으니, 그 장점에 대해서 한 번 생각은 해봐.
지금 아빠가 느끼기에는 결국에는 기술이야. 이 얘기는 오히려 아빠보다 윗세대에 더 많이 하던 얘기 같아. 그 당시에는 ‘기술’ 하면 아빠는 왠지 용접이나 자동차정비 같은 걸 떠올렸거든. 그래서 멋지다고 생각하거나, 나도 기술을 배워야지 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기술이라는 말이 결국에는 내가 살면서 활용이 가능하고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이더라고.
예를 들면 작곡도, 춤추는 것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것도, 코딩을 하는 것도, 재테크를 하는 것도, 컨설팅을 해주는 것도 모두 다 멋진 기술이더라. 정말 멋진 다양한 기술이 있어. 이 중 관심이 있는 게 있다면 무조건 빨리 해보길 추천할게. 전문성을 인정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많이 하는 거라서, 빨리 전문가로 인정받고 그걸로 돈도 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조건 빨리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러면 대학교를 꼭 갈 필요도, 돈을 벌기 위해 성인이 되기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을 수도 있어.
배움에 욕심을
원하면 뭐든지 될 수 있을까? 아빠는 너희가 뭐든지 될 수 있다고 믿고 살았으면 좋겠어. 물론 천재 음악가나 운동선수가 되길 바란다면 이미 늦었지만, 그건 사실 늦었다고 말하는 것조차 적절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 예외적인 이런 경우고.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무엇이 될지 한계를 정하지 않아도 돼. 꼭 ‘어른이 되었을 때’라는 시간적인 제약조차도 두지 않아도 되겠다. 당장 준비하고 배워서 되고 싶은 게 되면 돼. 너희에게는 매일 24시간이라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 선물로 주어지니까.
공부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학교 공부는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데… 공부라는 게 결코 책상을 타고 성공을 향해 직선 코스를 질주하는 레이싱 게임이 아니야. 너에게 맞는 너의 길을 찾는 모험, 그게 공부니까, 그런 공부를 위해서 뭔가 배우고 싶다거나 잘 알고 싶다면 더 욕심을 냈으면 좋겠어. 중간에 그만둬도 되니까 꼭 해보고 그다음에 무엇이 있는지 보는 기회를 꼭 잡길 바라. 아빠 엄마는 언제나 너의 공부를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