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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현 Aug 19. 2016

[여행에세이] 졸린데 자긴싫고

026. 기분이 아주 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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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전 서울행 급행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_응 나야 일어났어?

여자는 익숙한 목소리에 옆을 보았다.
역시나 아는 얼굴 이였다.
남자는 웃으면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_점심 뭐 먹고 싶어?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자


5년 전
오락실

여자는 비행기 게임도 총 쏘는 게임도 모든 게임을 
1분도 못 넘기며 죽어버리는 신기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딱히 남자가 못한다고 구박한 것도 아니었는데, 
풀이 죽은 여자는 괜히 애꿎은 기계만 발로 차고 있었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얼굴을 보고는 갑자기 일어나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가 오더니 교복 양쪽 주머니에서 동전을 잔뜩 꺼내
기계 위로 수북이 올려놓고는 웃으며 말했다.
‘2탄 갈 수 있을 때까지 해보자!’
그 뒤로도 둘은 게임기만 보이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주저앉았다.

5년도 더 된 일인데 여자는 마치 어제 일인 듯 선명하게 기억났다.

열차가 도착했고, 남자는 그 열차를 타야하는지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직 남자의 손에는 핸드폰이 있었다.
여자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사람들이 탈 수 있도록 비켰다.

그때는 말하지 못했다.

비행기게임도 총 쏘는 게임도 1분 이상 넘기지 못하는 나 때문에
주머니에 동전을 잔뜩 넣어 다니는 네가 너무 사랑스러울 때가 있었다고

몇 년이 지나고, 몇 개의 기억을 올리며
너 위로 다른 기억들이 쌓여 잊고 있었는데
네가 다정한 아이였던 건 생각이 나

이렇듯 길에서 우연히 옛 남자 친구를 만날 때
애인이었던 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다정히 통화하며
내 옆을 지나갈 때 기분은 습하다.

열차의 문이 닫혔다.
여자는 남자가 앉아있던 의자에 앉아 오래 걸릴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옛애인과의 커피는 쓰네요. 그런데 옛애인과의 술은 왜 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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