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우리가 헤어지는 다섯 번째 이유
대충 짐을 풀고, 가볍게 요기를 한 후 호텔로 들어가려는데
한국에서 첫 전화가 걸려왔다.
이곳에 오고 늘 조용하던 전화기가 나 여기 있다는 듯 요란스레 울려댔다.
저장되어있지 않아도 익숙한 번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익숙한 시간
포기한 듯 한숨 한 번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지겨워져버린 그의 술 취한 목소리
어쩔 수 없는 나 자신을 탓하며 최대한의 반항인 듯 침묵을 유지했다.
“어디야?"
다시 한 번 그가 담담히 묻는다.
"프랑스"
더 이상의 할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슬프게도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 사랑이 사라졌다. 미련이라 우기던 아픔들이 지나갔다.
솔직한 마음을 들킬까 무서웠다.
“끊을게”
“잠깐만, 연락 못 해서 미안해....”
“.... 우리는 두 번을 헤어지고 세 번을 만났어. 세 번을 헤어지고도 네 번을 만났어.
네 번을 헤어졌는데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연락을 기다리는 나한테 화가 났어.
그런데 계속 그렇게 해줘.
우리가 다섯 번째 헤어지는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너의 무관심일 수 있게“
후두두둑 소리에 창문을 열었더니 비가 내린다.
순간, 목에서 무언가 찰랑거린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내가 발버둥 쳐도 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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