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첫 음이 질문의 답이었다_리뷰

관현악과 학생들의 현합주 정기연주회는 어떨까?

by 유진
J.B. Vanhal : Double Bass Concerto in D Major
P.I. Tchaikovsky : Serenade for Strings, Op.48 (추천)
Vaughan Williams : Fantasia on a Theme by Thomas Tallis
I. Stravinsky : Pulcinella Suite (추천)

굳이 공연장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소리와 훌륭한 음악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는 늘 프로 연주자만이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전공생 수준에서도 꽤 높은 수준의 해석을 만날 수 있다. 6월 12일의 연주는 예술의 전당의 공연들과 맞먹는 수준의 퀄리티였다.


당신은 첼리스트 양성원을 아시는가? 어제는 연주자가 아닌 지휘자로서의 양성원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파리 국립 오케스트라의 크리스티안 마첼라루가 떠올랐다. 동작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각 악기 파트에 정확히 맞는 제스처와 흐름을 필요한 순간마다 조율한다. 손바닥을 학생들을 향해 일직선으로 펼치면 사위가 쥐 죽은 듯 고요해지고, 양팔을 바람처럼 움직이면 현악기들이 좌우로 오가며 소리를 주고받는다. 그날 공연장은 말 그대로 ‘소리에 압도되는’ 경험이었다. 이 레퍼토리 그대로 콘서트홀에 올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 연주에서 종종 느끼는 감동 중 하나는 '일치감'이다. 소리들이 얼마나 단단하게 모여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지, 그리고 그 흐름이 지휘에 따라 자연스럽게 강약을 조절하는지를 보는 것이 음악 감상의 묘미 중 하나다. 그런데 그날은 앳된 얼굴의 아이들이 그 감동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말하는 ‘큰 소리’란 단순한 음량이 아닌, 개성 있고 확신에 찬 활의 소리다. 차이코프스키의 세레나데 서두에서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은 그 도입부에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믿음을 실어냈고, 나는 그 순간 이 연주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나치게 유명한 곡일수록 시작이 어떻게 나올지 늘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그날의 첫 활 긋는 소리는 내가 들었던 수많은 음원보다 더 쨍하고, 날카롭고, 선명했다.


지휘 스타일은 기교를 앞세우지 않고 작곡가의 본질에 집중하는 담백함이 있었다. 어느 순간엔 잠시 머물고, 어떤 대목에서는 충실하게 몰아붙인다. 양성원 첼리스트가 손가락을 앞뒤로 움직이며 ‘꽃을 피워보라’는 듯 제스처를 주면, 아이들은 실제로 그 손끝을 따라 꽃을 피웠다. 예전에 내가 슈만의 협주곡에서 느꼈던 아쉬움, 피어나지 못했던 그 꽃잎이 이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는 걸 직감했다.


차이코프스키의 세레나데 2악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마치 푸른빛 파도 하나를 붙잡아 도화지 위에 길게 펼쳐놓은 듯, 수십 갈래의 가는 선율이 대각선으로 고요하게 파동 쳤다. 그 순간, 나는 꽤 큰 위기감을 느꼈다. 관객석이 충분히 어둡지 않았기에 제대로 울 수 없는 공간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살짝 울고 말았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소리 속에 있는 연주자들을 살짝 시기하게 되었다.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로 그 소리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저 세레나데 안에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본인들 역시 오늘의 연주가 꽤 괜찮았다는 것을 아는지, 내내 귀엽게 웃으며 연주하던 모습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부러운 사람들이었다. 나도 저 곁으로 다가가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이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어쩌면 직종이라도 바꿔야 하나, 하는 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그날은 정말 피곤한 하루였고, 당장 집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날의 공연은 다음 날까지도 여운을 남겼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했던 공연이었지만, 귀한 소리로 되돌아온 밤이었다. 그런 날이었다.


[줄라이페스티벌] 스트라빈스키, 춤이 된 모음곡과 제전의 리듬

출처: 한국 경제
스트라빈스키(1882–1971)는 발레음악을 통해 20세기 음악의 구조와 감각을 송두리째 뒤바꾼 작곡가다. 고전 양식을 현대적으로 비틀고, 원시적 충동을 음악으로 재현하는 데 탁월했던 그는, 상반된 미학을 넘나들며 시대를 앞질렀다. 이번 무대에서는 신고전주의의 절제미가 돋보이는 <이탈리아 모음곡>과 원초적 생명력이 폭발하는 <봄의 제전>이 각각 실내악과 피아노 독주로 펼쳐진다. 우아한 재치와 제의적 격정, 두 얼굴의 스트라빈스키가 한 무대에 공존한다.

1. 이탈리아 모음곡 for Violin and Piano

연주: 김응수(Violin), 일리야 라쉬코프스키(Piano)
<이탈리아 모음곡>은 발레 풀치넬라의 음악에서 발췌한 곡으로, 스트라빈스키가 직접 편곡한 바이올린-피아노 버전이다. 18세기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선율을 빌리되, 리듬과 화성은 현대적이다. 익숙한 고전춤곡 형식을 따라가지만, 각 악장마다 엇박과 불협이 살짝씩 틈입하며 긴장을 만든다. 특히 ‘세레나타’의 고요한 선율과 ‘가보트와 두 개의 변주’에서 느껴지는 구조적 유희는 신고전주의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과거를 현재로 되살리는 그의 방식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재창조에 가깝다.


2. 이탈리아 모음곡 for Cello and Piano

연주: 윤설(Cello), 박영성(Piano)
첼리스트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가 편곡한 이 버전은 원곡보다 서정적이고 깊은 정서를 품고 있다. ‘가보트와 변주’ 대신 ‘아리아’가 들어가며, 첼로의 중후한 음색은 선율에 인간적인 숨결을 더한다. 전반적으로 바이올린판보다 내면적이며, 각 악장의 흐름이 더욱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세레나타’와 ‘아리아’는 노래하듯 펼쳐지고, ‘타란텔라’는 리드미컬한 긴장감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다. 익살과 정념이 교차하며, 첼로는 그 중심에서 묵직하게 춤을 이끈다.


3. 봄의 제전 for Piano Solo

브런치에선 재생이 어려우니 링크를 확인하셔라!

: https://youtu.be/epgYMz-lSqI?si=X9XorKm2wg7RXbb7&t=4

연주: 김희재(Piano)
<봄의 제전>은 인간 존재의 근원을 향한 음악적 응시다. 1913년 초연 당시 사회적 스캔들을 일으킨 이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원시적 충동과 집단의식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놀랍다. 피아노 솔로 편곡은 다소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에너지를 건반 하나로 끌어안으며 오히려 더 직접적인 긴장을 만든다. 강박적인 리듬, 불협화음의 충돌, 장면 간의 급격한 전환이 쉼 없이 이어진다. ‘젊은 처녀들의 춤’이나 ‘선택된 처녀의 희생’ 같은 악장은 선율보다 리듬이 서사를 이끄는 대표적 예다. 단일 악기로 구현된 이 전례 없는 제전은 여전히 청중을 무대 위 의식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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