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을 감당하고 사는 법.
태어남과 동시에 나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나의 세계가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나의 걸음이 닿는 곳마다 넓어지는 나의 세계는 그 크기만큼이나 나에게 무섭게 다가온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에는 그 선택의 크기만큼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한 당신은, 나를 선택하지 않은 당신으로부터 받을 그 세계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감히 가늠이나 할 수 있겠는가.
또한 나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당신이 나의 세계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 모든 사실은 나와 당신을 곪게 하면서도,
그 순간의 사랑스러움은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 시키곤 한다.
나의 모든 말과 행동에서 예견하지 못한 일이 펼쳐지는 순간들은
물에 잉크가 퍼지듯 어디론가 스며든다.
이미 물이 짙게 들었는지도 모른다.
.
.
.
나의 예상에서 벗어나는 일들을 감당할 수 없는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온다.
만남의 설렘이 가져다주는 사랑의 크기는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텐데 말이다.
나에게 과분히도 넘치는 그것들이 어쩌면 그들에게는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에게 남은 것은 고작 그들의 마음을 추측하는 것이 다라는 사실조차도 나를 괴롭게 한다.
살면서 수많은 말들을 뱉으며 타인의 인생에 개입하고 또 멀어진다.
나는 그릇이 크지 못하다.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가슴속에 넘치는 나의 감정조차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그 속에 곪아든 마음을 스스로 치워낼 생각조차 하지 않고
타인으로 채우려고 든다. 나의 안 좋은 오랜 습관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가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만큼이나 허망하고도 안타까운 일이다.
나에게 지난날들 동안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알량한 마음이 가지고 싶은지, 애타게도 남을 찾는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사랑스럽고도 아까운 것들이다.
나는 내가 가장 안타깝고도 사랑스럽다.
그만큼이나 고통스럽다.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되는 이 고통은
나를 곪게 하고, 이 고통이 나를 살게 한다.
내가 죽고 싶었던 순간에는 두렵지 않았다.
정말 어쩌면 죽겠다 싶던 순간은
지금 죽는다 하더라도,
저 차에 내가 치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다지 슬프지 않을 것만 같고,
그런다 한들 아쉬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때 느껴졌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나는 빚진 것이 많다.
태어남으로 인해 시작된 이 무거운 마음은 죽는다 한들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날에는 합리화하기 바빴다.
나의 존재에 가치는 태어남에 증명되었고, 살아있음에 쓸모를 보였다면서.
이런 겉핥기 식의 말은 시간만 주어진다면 아마끝없이 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말들은 늘 한정되어 있고 같은 것에 고통받고 실망하며 결국 끝은 한결같았다.
그럼에도 글을 지속해서 쓰는 이유는
타인에게 이 감당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내비쳤을 때 다가오는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나라는 사람이, 나라는 존재가 기억되지 않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있다.
부담은 주지않되 이익은 챙기는,
사람의 관계가 그리 간단했다면,
마음에 짐이 글로 사라졌다면,
글을 지우듯 모든 생각이 지워졌다면.
그랬다면 아마 나는 지루해 죽었을 것이다.
나의 삶이 주는 이 고통이 나를 지속시킨다.
요즘은 내가 책임지는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세계가 넓어지곤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만 할까.
다소 피곤해지는 것도 같다.
안녕하세요! 박경현입니다.
이번 달의 글은 '태어남이라는 순간부터 이를 풀어나가는 방법'에서 시작한 짧은 에세이를 준비했는데요.
삶을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잡음들이 들려옵니다.
많은 정보들과 소음들 사이에서 견디다 보면, 어느새 멀어버린 눈과 귀에
더이상 내 속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내 안의 잡음들을 기록하는 것을 즐기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제 글이 조금은 따뜻하고 위로가 되길 바라며, 이만 말을 줄입니다.
대학에서 도자 작업을 하며, 존재간의 위계에 물음을 던지는
박경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