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의 출근이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동안은 ‘아이가 더 크면 언젠가 나도 일을 하겠지’라며 마음만 흘려보냈다. 집 안에서 방석만큼만 자리를 차지하던 아기는 어느새 점점 자기 영역을 늘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신기하고 좋았다. 가끔씩 여전히 불쾌한 회사의 장면이 꿈에 나타났지만 꿈이어서 다행이었다. 고개만 돌리면 내 옆엔 아기가 있었다. 자기 손이 제 것인 줄도 모르고 낯선 듯 구경하다가, 마침내 주먹을 물고 냠냠 먹는 아기. 그런 아기를 ‘인간’으로 키우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그랬던 내가, 어느 날 번갯불 콩 구워 먹듯이 취업을 해버렸다.
돌이켜보면 시작은 단순했다. 예전 회사 다닐 때 함께 일했던 동생이 한 달 전 결혼한다기에 이미 퇴사한 내 결혼식에도 와준 것이 고마워 반가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처음으로 아기를 카시트에 태우고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달렸다. 아기가 차에서 울면 바로 돌아와야지 했지만 고맙게도 연우는 창밖이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국도를 달리는 길은 부드러웠다. 이제 막 초록빛을 내뿜는 나무들도 마음에 들었다. 늦지 않게 도착해 기쁜 마음으로 동생의 결혼식을 구경했다. 회사 동기들을 만나 뷔페 테이블에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퇴사한 지 벌써 6년 차이니 그때의 감정도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회사 이야기를 한 시간째 같이 듣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불편해졌다.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이미 뒷걸음치고 있었다.
반가움과 불편함의 중간 어딘가에서 뱅뱅 맴돌기만 하다가 어정쩡하게 돌아왔다. 아까 그 초록빛은 어디로 갔는지 풍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멍한 기분으로 초점 없이 운전대만 조금씩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 멍한 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이유를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퇴사를 안 했다면 지금쯤 나도 동기들처럼 얼마쯤 벌었겠지.’ 하며 월급을 아쉬워한 적은 있어도 나온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기분이 이토록 울적했던 걸까.
내 기억 속 까마득한 과거에 파묻혀 살던 사람들이 사실은 저렇게 생생한 표정으로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그들이 잘 산다는 게 왜 내 마음을 이리도 괴롭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이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며칠에 걸친 내 자문자답을 요약하면 이렇다.
‘그 사람들이 잘 사는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쟤들은 잘살면 안 돼?’
‘상관없지...’
‘너는 행복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아니! 나 지금 너무 행복한데?’
‘그런데 왜 저 사람들을 며칠째 신경 쓰는 거야?’
‘쟤들은 일하잖아…’
그렇다. 결국 회사도 사람도 아닌 ’ 일‘이었다. 나도 일은 했다. 육아와 살림이라는 일. 남편은 퇴근 때마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며 안아주었다. 가정주부도 직업이라며 주부의 노동력을 돈으로 환산하면 삼백만 원이라더라 하는 소리도 자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살림이 내 적성에 맞고 육아가 주는 행복이 크다해도 내가 생각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냥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으니 당연히 해야 하는 기본값정도랄까.
결혼식을 다녀오고 일주일정도 지나자 그동안의 감정도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그냥, 나만 멈춰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요 며칠 우울했다.’라는 한 문장으로 퉁쳤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심경의 변화가 컸는지 이력서를 쓰고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를 열었다. 일자리라면 요양보호사, 병원, 학원뿐이던 것이 어쩐 일인지 첫 페이지 첫째줄에 있는 회사가 나랑 꼭 맞는 것만 같다. 그렇게 첫 번째 이력서를 넣었다.
다음 날 그곳에서 문자가 왔다. 그날이 월요일이었는데 화요일 면접을 오라는 내용이었다. 막상 오라는 연락을 받느니 덜컥 겁이 나면서도 현실적으로 준비가 안되었단 생각에 망설여졌다.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두었지만 아직 네 번째였고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 키즈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아기엄마가 추천해 준 어린이집이 생각났다. 집 앞에 있어 걸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 어차피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데 어린이집 자리 있으면 가고 아님 말자’
의외로 자리가 있었다. 하반기에 맞춰 반이 증설되는데 마침 한자리 비어있으니 다음 주부터 등원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도 그렇듯 일에도 인연이 있는듯하다. 여기 입사하려고 보니 일이 술술 풀린다. 그렇게 화요일 면접을 보고 그날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남편은 오후에 출근하고 밤늦게 들어온다. 나는 아홉 시에 출근해서 여섯 시에 칼퇴근할 수 있다. 남편이 아이의 등원을 맡고 내가 하원을 맡았다. 아이가 연장반에 남는 것이 마음에 쓰이지만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지금보다 더 최선을 다해 사랑을 쏟겠노라 다짐한다.
출근 첫째 날. 어색하지 않은 척 출근길 버스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본다. 버스가 옆 차선의 승용차와 엇비슷하게 가는듯하더니 이내 추월해 버렸다. 괜히 이긴 것 같아 웃음이 났다. 에어팟으로 노래를 들으니 이십 분도 금방이다. 안쪽에 앉았다 내릴 채비를 하니 옆사람이 자신도 곧 내린다며 말 대신 가방을 움켜쥐며 무언으로 답한다. 사람들 속에 섞여 우르르 내린 채 각자 흩어져 걷고 있는데 기분이 묘했다. 어딘가 개운한 기분도 들었다. 그제야 마음 한구석에 깊게 자리를 차지하던 눈덩이가 모두 녹아내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