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엔 등원 전 한 시간, 하원 후 한 시간.
잠들기 전까지, 하루 중 아기와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은 많아야 두 시간 남짓이다. 그마저도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데 다 써버린다. 이럴 줄 알면서도 일을 시작한 건 나니까, 누구 탓도 하지 못한다.
잠자는 시간만이라도 함께 있고 싶어 연우 옆에 찰싹 붙어 자고 있는데 이마에 열이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졸린 기색이 역력한데 본인도 괴로운지 연신 뒤척이며 칭얼거린다. 여름밤 에어컨을 켜고 자는데도 아기의 손발은 불타는 고구마 같다. 급한 마음에 해열제를 먹이고 억지로 재워본다.
내가 늘 이렇다. 걱정은 남의 몫인 줄로만 생각하다가 일이 닥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다. 맞아봐야 그제야 아픈 줄 안다. 때론 이러한 과감함이 장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신중하지 못한 엄마를 둔 탓에 연우가 아픈 건 아닐까 괜한 자책이 밀려온다.
적응기간이 짧아서였을까. 갑작스럽게 어린이집으로 등 떠밀어서, 그 놀란 마음에 아이가 아픈 것만 같아 죄책감과 슬픔에 어쩔 줄 모르겠다.
지난 2주간 그래도 무사히 적응하면서 엄마랑 웃으며 '빠이빠이'를 하길래, 역시 순한 아기라며 기특하다고만 생각했다. 매일 올라오는 알림장에서 연우는 항상 깊은 보조개를 보이며 웃고 있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 아기. 어린이집에서도 이렇게 적응이 빠른 아기는 드물다며 놀라워했다.
39.8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열을 재어보니 금방이라도 40도가 넘을 것만 같다. 내 품에 포옥 안겨 떨어지지 않으려는 연우를 보니 회사에 가고 싶지 않다. 그래도 가야 한다. 회사니까. 오전에 병원에 데려갈 아빠가 있다는 게 너무 다행스럽다. 염치 불구하고 앓는 소리를 하면 일정 바꿔가며 한달음에 손주 보러 찾아오는 외할머니까지. 이들이 없었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이력서를 넣어보는 것조차 못했겠지.
품에 안긴 연우를 억지로 떼어놓고 부랴부랴 옷을 입는다. 아빠 품에 안긴 아기가 나를 보며 힘없이 흐느낀다. 이젠 아침에 내가 옷을 갈아입으면 나가서 한동안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연우도 잘 안다. 갓 나온 모닝롤 빵처럼 통통하고 따뜻한 연우의 볼 위로 아기의 눈물이 주욱 흘렀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빠듯한 월급에 교통비며 간식비 떼고 나면 남는 것도 얼마 없는데, 저 아이를 울리면서까지 벌어야 할 돈일까.
말도 못 하는 아기라 몸이 대신 말하는 것만 같다.
‘괜찮은 척 잘 다니고 있지만 사실은 나 아파요’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상한 마음에 언니에게 소식을 알리자, 역시나 워킹맘 선배답게 한마디로 조언해 준다.
“다~ 지나간다. 그 돈으로 과자 사주고 장난감 사주면 되는겨~”
그래, 어차피 언젠가는 겪을 일이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디선가 아기들은 엄마의 감정을 냄새만으로도 느낄 수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엄마가 미안해하면 아기도 그걸 느끼고 자신이 불쌍한 아이라고 스스로 프레임을 씌운다고도 했다.
엄마가 말로만 괜찮은 게 아니라, ‘진짜로’ 괜찮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제 곧 수족구의 계절이 온단다. 짠한 마음 대신 단단한 마음이 필요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