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엄마, 자라는 아이

by 로엘라

사진 15,986장, 영상 2,011개.


지금까지 24시간 연우와 함께 지내며 쌓아온 기록들이다. 그러면서도 저장에 대한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육아일기가 참 쓰고 싶었다. 눈으로만 담을 수 있는 모습이 아닌 글로 채워지는 다른 뭔가가 있다고 믿었다. ‘오늘은 연우가 응가를 6번이나 했다’던지, ‘거실바닥은 아기가 흘린 수박국물 때문에 끈적거렸다’와 같은 글을 남기고 싶었다. 사소한 문장 안에 연우와 함께한 감각과 감정이 녹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진은 연우의 웃는 모습을 남겼지만 그를 바라보는 내 표정을 함께 남겨주진 못했다. 하지만 글은 나를 함께 남긴다.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지만 그때 느꼈던 터질듯한 감정들은 오직 글로만 남길 수 있다.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쓰고 싶은 문장이 하루에 하나쯤은 매일같이 지나갔다. 그 글들을 쓰지 못하고 흘려보낸 마음이 둑처럼 쌓여 언제라도 터질 것 같았다.


사실 육아일기를 시도해 본 적도 있다. 두껍고 예쁜 노트를 샀지만 3일도 못 가 포기하고 말았다. 핑계겠지만, 연우랑 함께 있으면 일기 쓸 시간은 오분도 나지 않았다.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잠도 못 자던 지난 15개월이었다. 심지어 어린이집 가기 전까지 연우는 통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마다 안방과 연우방을 오가면서도 이 시간들을 내가 언제라도 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매일 변하는 연우의 오늘에 집중하느라 과거는 자연스레 흩어져버렸다. 그 흩어진 기억들을 꽃잎 모으듯 모두 줍고 싶었다.


새로 출근하는 회사는 계약기간 1년짜리 그리고 9to6 가 정확히 지켜지는 곳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의 밀도가 낮은 데다 요즘은 일 자체도 많지 않아서 오전에 한두 시간 집중을 하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내 시간이다. 10 to4 업무라면 얼마나 좋을까. 3시간. 연우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3시간 동안 나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턱만 괴고 있다가 온다 생각하니 죄책감에 속이 다 울렁거렸다. 평일엔 연우와 함께 산책을 갈 수 없다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나서 뒤늦게 서글퍼졌다.


서러운 마음을 쓰지 않으면 오래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 그 3시간은 연우를 위해 쓰자. 육아일기만큼 적당한 것이 없다. 밀린 방학일기를 개학 이틀 전 부랴부랴 써내야 하는 초등학생이 된 것처럼 마음이 조급해진다. 분명 재밌고 신나는 날들이 많았는데 펜을 손에 잡으니 머릿속이 새하얘서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루 일과만 나열하다가 결국 일기 마지막 문장은 모두 ‘참 재미있었다’라고만 끝을 낼까 봐 걱정이 앞선다.


숨을 크게 삼키고 엉킨 실타래를 풀듯 연우의 신생아 시절을 잠깐 떠올려 본다. 깨어있는 시간 동안 뭐 하고 놀아줘야 할지 고민스러워 주구장창 모빌만 보여주던 때. 100일 전까지 아기가 예쁜 줄도 모르고 서로 데면데면하던 날들. 어쩌다 안 자는 날엔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안고서 둥가둥가 하다 결국엔 아기에게 소리 지르고 함께 울기도 했던 날들.


그 시간들이 이제야 글이 된다. 처음으로 아이와 떨어진 시간이 생긴 것이다. 막상 시작하려니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도리어 말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다시 한번 숨을 가다듬으며 의지를 다진다. 내게는 만 장이 넘는 사진과 수천 개의 영상이 있다. 이 재료들을 커닝페이퍼 삼아 하나하나 곱씹으며 예쁘게 기록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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