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있는데 연우가 개어둔 수건을 두 팔에 안고 문 앞에 서있다. 빨래 후 손이 모자라 거실에 몇 개를 두고 왔더니 그걸 챙겨 온 모양이다. 이미 흐트러진 수건들이 연우의 가슴팍에 아슬아슬 안겨 있다. 엄마를 돕는 것이 내심 뿌듯한지 아기의 뽀얀 얼굴에 다부진 눈빛이 서려 있다. 백설공주를 위해 심부름하던 일곱 난쟁이 중 한 명 같았던 그 모습.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게 아직도 아쉽다.
물티슈 덮개를 열고 싶어 하며 낑낑거리길래 도와줬더니 냉큼 두 장을 뽑는다. 그리고선 양손에 쥐고 이리저리 바닥을 문지른다. 팔꿈치를 곧게 펴고 어찌나 힘 있게 닦는지 엉덩이가 오르락내리락한다. 아무도 시킨 적 없는데도 연우는 진지하다. 청소하는 자세가 제법 야무지다. ‘이제 설거지도 시켜야 하나’ 농담이 튀어나올 만큼 사랑스럽고 우습고 기특하다.
먹고 있던 쌀과자를 느닷없이 엄마 입에 밀어 넣는다. 달라고 할 땐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으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연우의 눈동자를 따라가 보니 과자 봉지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그럴 줄 알았다. 연우는 새 과자가 먹고 싶었던 거다.
아무 맛도 없는 쌀과자는 잘도 주면서 과일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엄마도 아-’ 딸기를 달라고 아무리 입을 벌리고 기다려도 깜깜무소식이다. 딸기는 자기 입에 쏙 넣고 손가락만 내 입에 집어넣는다. 귀엽고 얄밉고, 다시 귀엽다.
넘어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며 ‘으앙-’ 한다. 별 반응이 없으면 좀 더 세게 부딪힌 척을 하며 입을 벌려 우는 흉내를 낸다. 연우의 할리우드 액션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웃음을 참으며 ‘아이고 우리 아기 많이 아팠어?’ 하고 안아주면 호- 해달라며 오른팔을 내민다. 분명 왼팔을 부딪혔는데 말이다. 그냥 안기고 싶었던 거다. 자기도 부끄러운지 히죽 웃는다. 그냥 와서 안아달라고 하면 되는데 왜 굳이 아픈 척까지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과일 장난감을 싹둑 썰며 한참 놀다가도 인형이 눈에 띄면 인형한테 냅다 달려간다. 봉제인형 목이 구부러지도록 꼭 껴안아주기 위해서다. 그러고 나서 엄마에게도 건네준다. 그럼 나도 인형에게 뽀뽀도 해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줘야 한다. 인형을 안아주고 금방 되돌려주면 받지 않는다. ‘아 예쁘다-’ ‘우리 곰순이 사랑해’ 하며 정성스레 토닥여 준다. 그제야 연우는 만족한 표정으로 인형을 데려간다. 내가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동안 엄마를 감시하는 듯한 아기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내가 가진 사랑을 인형에게 모두 쏟아부어야 할 것만 같다. 결국, 그 사랑은 전부 연우 건데.
엄마를 따라 카페에 온 연우가 신이 났다. 먹는 걸 좋아하는 아기의 눈앞에 온갖 종류의 빵들이 펼쳐져 있다. 엄마는 달달한 초코빵을 마음껏 먹고 아기에게는 촉촉한 식빵 한 장을 쥐어 준다. 연우가 부러운 듯 엄마를 쳐다보지만 아쉬운 대로 식빵을 먹기로 한다.
고개가 부르르 떨릴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려 식빵을
베어 물었다. 기세가 대단해서 놀라며 쳐다봤더니 그 크기가 고작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하다. 정말 하찮은 한입이다. 오물오물 부지런히도 씹는다. 동전만 한 한 입으로 커다란 식빵 한 장을 다 먹었다. 확실히 기세가 대단한 게 맞다.
우리 집엔 동물, 가족 모양의 펠트자석이 거실 복도 끝 자석보드에 어지럽게 붙어 있다. 그동안 연우는 무엇을 가지고 오라 하든 할머니 아니면 할아버지를 데리고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연우가 호랑이를 가져오라는 말에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며 고민하더니 호랑이를 집어 들었다. 그날 아침은 엄마아빠의 환호성으로 축제 분위기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기대하는 마음으로 호랑이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연우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보드를 향해 걸어갔다. 손에는 기린을 쥐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엉뚱한 걸 집어 들고 오는 모습에 박수 대신 박장대소만 했다.
연우도 뭔가 잘못된 걸 눈치챘나 보다. 호랑이를 가지고 오라는 똑같은 주문에 이제는 여우, 호랑이, 코끼리, 하마. 손에 잡히는 건 죄다 들고 온다. 그중에 하나는 맞겠지 싶은 듯한 연우만의 진지한 전략이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연우는 주방에서 논다. 이전엔 안아달라고 찡찡거리더니 싱크대 서랍을 열기 시작하면서 신세계가 열렸다. 프라이팬, 텀블러, 연우 식기까지 죄다 바닥에 두드리고 본다. 한참이나 조용해서 긴장하며 뒤를 돌아보니 연우가 가장 높이 있는 서랍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까치발을 들고 안간힘을 쓰더니 기어이 국자와 뒤집개를 꺼낸다.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서니 연우가 보이지 않는다. 주방에선 다 놀았는지 거실에서 한가로이 책장을 넘기고 있다.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서랍을 다시 열었을 때 국자와 뒤집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제자리에 두기 위해 연우가 한번 더 까치발을 들고 애썼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했다. 아기의 가지런한 마음이 너무 사랑스럽다.
사실, 아기는 뭐니 뭐니 해도 잘 때가 가장 사랑스럽다. 길게 말려 올라간 속눈썹을 보며 그 속의 눈동자를 떠올린다. ‘여기 어디쯤 보조개가 있었지 ‘ 하며 볼을 어루만진다. 보조개가 없어도 예쁘다.
잘 때가 가장 사랑스럽다는 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예쁘다는 뜻이다. 아기는, 존재만으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