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불 켜진 닭장에 갇힌 암탉 같아.’
육아만 전념하며 먹고 자는 것도 쉽지 않던 시절, 남편에게 자주 하던 말이다. 밤 열두 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남편과 이른 새벽 눈을 뜨는 연우. 서로 엇갈린 시간을 보내니 하루의 시작과 끝이랄 게 없었다.
걷기 전까지 배만 부르면 만사 오케이던 연우가 걸음마를 시작하며 멈추지 않는 에너자이저가 되었다. 놀이에 집중하다가도 엄마가 곁에 없으면 엄마를 찾아 온데 쫓아다녔다. 아기를 어디에 내려놓아도 다다다다 뛰는 소리를 내며 엄마를 찾아내는데 10초면 충분했다. 연우가 뛰기 시작하며 작은 볼일조차 맘 편히 허락되지 않았다. 아기를 안고 볼일 본다던 엄마가 내가 될 줄이야.
연우는 내가 주방에만 들어서면 팬트리에 숨겨둔 바나나 아니면 우유를 달라고 양손을 곱게 모아 ‘주세요’ 하며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물 한잔이라도 마시려면 연우도 같이 한 모금 해야 했다. 먹는 걸 좋아하는 데다 어른 음식에 관심이 많은 연우와 있을 때면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 엄마 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들이 맛있어 보이는지, 늘 무릎에 매달려 자기도 달라고 짹짹거리듯 애타게 손을 뻗었다.
‘연우 먹을 때 너도 같이 챙겨 먹어.’ 라던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선 ‘연우 잘 때 뭐라도 챙겨 먹어.’ 라며 슬쩍 말을 바꿨다. 하지만 나는 늘 밥보다 잠이 급했다. 그동안 육아일기가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처음 맞는 아이와 떨어진 시간. 연우를 어린이집에 남겨 두고 회사로 도망쳐 온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괴로웠다. 괜한 죄책감에 속이 울렁거렸다. 그 불안을 연료 삼아 연우를 쓰기로 한다. 도토리 모으듯 부지런히 글감을 모으고 흐트러지기 전에 마음을 담아 글을 쓴다. 그토록 쓰기 힘들던 육아일기가 지금은 왜 이리도 쉽게 써지는 걸까 싶다. 아이에 대한 글은 아이와 떨어져 있을 때 비로소 써졌다. 연우를 글로 품기 시작하자 오히려 내 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몸은 멀어졌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친밀해졌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연우에 대한 글을 쓰기로 다짐하던 날, 잊고 있던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공지영 작가가 힘든 사춘기를 겪는 딸에게 매주 썼던 편지를 엮은 책의 제목이다. 문장을 읽는 내내 작가의 딸을 몹시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글들이 우리 엄마가 써준 편지라고 상상하며 읽었다. 사랑을 담은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다 보면(엄마답게, 가끔 잔소리도 있었다) 엄마가 꼭 내게 말 대신 글로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불현듯 그 책을 읽을 때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때 느꼈던 부러움은 잠깐 스쳐지나고 이내 책을 쓴 작가의 마음이 더 크게 와서 닿았다. 유명 작가의 글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이었다. 기록된 사랑은 누군가를 다시 살게 하는 힘이 될 터였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 쓰다듬어 주고, 함께 놀아주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서 마음이 힘들어질 땐 글로 일으켜 세워주고 싶다.
언젠가 이 글들이 연우에게 닿기를. 그때의 나처럼, 어쩌면 이 문장들이 연우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또 다른 품이 되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