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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loura Apr 21. 2021

회사와 이별을 했다.

그동안 연애를 시작할 땐 첫눈에 반하거나 심장이 쿵! 하고 떨림을 주었던 사람들과 만났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온종일 그 사람 생각에 괜히 이름 세 글자 써보던 시절. 하지만 시간이란 참 무섭다. 그렇게 좋아 죽다가도 서로에게 점점 익숙해지면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강요가 시작된다. 처음엔 이해하려 노력해보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서로 타협점을 찾기는커녕 좁힐 수 없는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할 뿐이다. 상대를 포기하기 시작하면서 관계의 끝을 향해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그 때로부터 한참을 지나온 지금, 내가 혹은 상대방이 무엇을 잘못했을까 생각해보면 딱히 큰 잘못도 없다. 서로 맞지 않았을 뿐.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만큼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진 것’ 뿐이다. 이제는 ex-가 되어버린 나의 회사생활도 마찬가지다.      


취업 준비하던 시절, 동기들은 하나 둘 학교를 떠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도록 나는 도서관 지하 열람실에 남아 자소서 쓰는 생활을 1년 가까이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님 얼굴 보기도 미안해서 밤늦게 들어가서 자는 척만 했다. 그러면서도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처량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 모른다. 십 원 한 장 벌 수도 없고 시간 쓰고 돈 쓰고 밥만 먹는 식충이 같은 하루의 반복. 말 그대로 소모적인 인간의 내가 스스로 너무 싫던 시절.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쓰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 넓은 세상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아무 곳도 없다는 현실에 취업한 동기들 앞에서 억지웃음조차 지을 수 없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조차 몰라서 시선을 떨어뜨린 채 발로 애꿎은 땅만 차고 있을 때 내 손을 잡아준 곳이 나타났다. 나의 ex-회사다. 처음부터 나를 위해 존재했고 이제야 서로 조금 늦게 만난 것처럼 그곳은 나의 이상형과 200% 들어맞는 곳이었다. 회사 사람들은 모두 젊고 친절했고 나는 분에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6개월이라는 인턴기간이 길기는 했지만 다른 곳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침 여덟 시부터 밤 아홉 시가 넘도록 함께 야근했지만 부당하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 이들에게 내가 도움되는 일손이 됐다는 게 신기하고 감격스러웠을 뿐이다. 각종 자격증 만료기간을 코앞에 남겨두고 그렇게 원하던 그곳에 나는 진짜 회사 직원이 될 수 있었다.     


지자체의 출연을 받아서 어느 정도 공공성을 띄긴 하지만 그렇다고 공무원은 아니었고 금융업이긴 하지만 현금을 다루지는 않아 위험부담이나 실적 스트레스도 적었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최고의 직장이었다. 나는 그곳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업무를 끝내고 동기들과 마시는 술자리도 좋았고 이 회사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들려주는 선배의 훈계도 마냥 듣기 좋았다. 하지만 운명 같던 첫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편안함이 자리 잡듯 구원처럼 느껴지던 나의 회사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하면서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회사와 내가 점점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동안 눈치 채지 못했던 단점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적응을 하기는커녕 자꾸 단점들만 눈에 보여서 외면하려 하면 할수록 그 단점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까지 했다. 참고 받아들이는 것에 점점 힘이 부치기 시작한 것이다.      


‘초심을 잃은 건가’ ‘내 의지가 약한가’ ‘내가 여기 어떻게 들어왔는데’ 그동안 여느 연애처럼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또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이려 하면 할수록 나는 나를 잃어야 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기 싫었다. 직장과 내 생활의 균형을 맞추려 무던히도 애썼지만 그 간극은 자꾸만 벌어졌다. 한때는 영혼을 집에 놓고 출근한다고 생각하며 다닌 적도 있다. 나는 일하는 로봇이다. 회사는 돈 버는 곳일 뿐이다. 감정은 접어두고 회사 밖에서 진짜 내가 되면 된다. 1년, 2년, 3년.. 그렇게 살면 과연 명예롭게 퇴직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원망만 남을 것 같았다. 회사 모니터 앞에 놓아둔 거울 속 내가 누구 한 명 잡아먹을 듯 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걸 몇 번씩이나 마주하고 그때마다 아차, 싶었지만 해가 갈수록 그 거울 속 사나운 나와 마주치는 순간은 점점 늘어만 갔다. 사람들은 그때마다 ‘남들 다 그렇게 살아’ ‘이 정도면 됐지’ ‘회사에만 신경 써서 그래, 다른 취미생활도 가져봐’와 같은 말들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면 ‘나만 예민한가’ 고개를 갸웃거리면 멘털 약한 나를 다시 점검하기 바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울음이 되고 기어이 숨까지 제대로 못 쉬는 지경에 이르게 됐을 때 결국 회사에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대방은 ‘내가 더 잘할게’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와 같은 말로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원하는 지점에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과 일하게 해 주겠다며 설득했다. 회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네가 싫어하는 회사의 모습들 나도 알고 있다’며 싹 다 뜯어고쳐 줄 테니 속는 셈 치고 지켜보라 했다. 7년의 오랜 만남을 하루아침에 끊어낼 수는 없어 흔들렸다. 그래, 다 바꿔준다는데 믿어볼까 하고 1년을 더 다녔다. 그 마지막은 회사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한 해였다고 말하고 싶다. 동료직원이 ‘이제 좀 다닐만하지?’라는 말을 듣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퇴사를 만류하던 그 사람의 멱살을 잡고 왜 그랬냐고 따져 묻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내 선택으로 남았는데 남 탓이나 하며 화를 내다니. 그때 다시 한번 진짜 이별을 결심했다. 누군가 노력해서 달라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1년이라는 시간은 언젠가 해야 할 이별을 잠시 유예했을 뿐 관계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남은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며 내가 진짜 그만두어야 할 이유들만 더 늘어갔다.  결국 우리는 성격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렇게 이별을 맞이했다. 지금은 서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래도 20대 청춘을 함께 하며 같이 성장했던 곳이다. 이별을 했다고 해서 함께 해온 시간 전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여느 연애처럼 첫 만남은 강렬했고 꿈꾸듯 지냈다. 조금씩 알아가면서 맞춰가려는 노력 또한 많이 했다. 일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다. 그 오랜 고민의 결론은 이별이었다. 성격차이. 그 지랄 맞은 성격을 받아줄 만큼 이젠 더 이상 회사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회사보다 내가 훨씬 더 소중하다. 그래서 난 8년의 만남을 끝으로 회사와 이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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