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글은 누군가만 쓴다
누구나 주변에 한 명쯤 사업가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있다. 일상의 모든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연결이 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흘려보낸 수많은 아이디어들
중 하나로 누군가가 대박이 나면 꼭 아쉬워하며 한 마디를 덧붙인다. ‘아 저거 내가 먼저 생각한 건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나는 사업가보다는 작가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이었다. 대형 서점에 나란히 누워있는 책들을 둘러보며 아쉬운 듯 자주 중얼거렸다. ‘ 아 이거 내가 먼저 쓰려던 건데...’
멘탈 약한 내가 꼭 부서진 쿠크다스 같다고 생각할 땐 유리멘탈에 대한 에세이를 보며 정말 재밌는 아이템을 빼앗겼다고 억울해하기까지 했으니, 이런 사실을 모르는 진짜 작가님한텐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런 나의 건방진 태도는 두 가지 방식의 거울 치료를 통해 싹 낫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나와 비슷한 사고방식의 사람을 마주하게 된 경험이다.
예전 다니던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후배가 있었다. 그 후배는 늘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하소연을 자주 했는데, 어느 날은 내가 휴가 중일 때도 전화해서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부당함을 못 참겠다는 듯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전하는 이야기의 시작은 대체로 비슷했다.
“원래 저도 하려고 했는데...”
지점장님이 지시한 업무를 하려고 했으나, 어떠한 사정으로 못했고 그 때문에 지적을 받은 것이 너무 억울하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들어주다가도 매번 같은 레퍼토리로 혼나고 억울해하는 후배를 보면 오랜 시간 고민을 들어준 내가 억울할 지경이었다.
“하려고 한 건 한 게 아니잖아.”
“그래도 저는 진짜 하려고 했어요.”
돌림노래처럼 똑같은 말을 몇 번씩이나 주고받다가 결국 내가 포기했다. ‘하려던 마음은 한 게 아니라는’ 말을 온몸으로 튕겨내는 그를 보며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 튕겨 나온 말은 도리어 내게 와서 박혔다. 글을 쓰려던 마음은 글을 쓴 게 아니라는 말을 그에게서 들은 셈이다. 이쯤 되면 그 후배는 하늘에서 나를 지켜보던 누군가가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보낸 메신저가 아니었나 싶다.
그를 통해 거울치료를 받은 내가 마침표를 제대로 찍게 된 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동안 아쉽고 억울한 마음의 정체는 생각이 글의 원천이고, 글은 마음만 쓰면 언제든 쓸 수 있다는 건방진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디어만 좀 더 정갈하게 다듬으면 글은 그냥 뚝딱 써지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베스트셀러가 되었을지 모르는 나의 머릿속 글감들은 종이 밖으로 나오니 말 그대로 처참했다.
글은 생각이 아니라, 생각의 정수였다.
백 번, 천 번쯤은 생각해야 비로소 한 문장으로 빼꼼히 얼굴을 보여줬다. 이를 깨닫고 나니 이제는 내가 하려던 말을 정갈하게 한 문장으로 정리해 준 글들을 만나면 반갑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들을 놓치지 않고 낚아채 ‘잡았다, 요놈!’ 하고 얼굴을 만천하에 알려주니 그저 감사할 수밖에.
내 마음과 같은 작가들을 만난다면 오랜 친구와 재회하듯 마주 보고 서서 손깍지를 끼고 뱅글뱅글 돌고 싶다.
그땐 글감을 빼앗겼다고 억울해했던 마음까지 이실직고하고 고개 숙여 사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