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하원하고 간식으로 연우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를 주었다. 연우가 뱃속에 있을 때 내가 가장 먹고 싶어 했던 딸기다.
요즘 연우는 ‘모양이 바뀌는 것’에 예민하다. 반으로 자른 딸기를 먹고도 켁켁대길래 다시 반으로 더 잘라주니 모양 바뀐 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 다른 딸기를 달라고 앙앙 거린다. 부랴부랴 새 딸기를 씻어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접시를 양반 다리 사이에 끼워 넣고 한 알씩 맛있게도 오물거린다.
역시나 이번에도 아기의 옷에 과즙이 후두둑 떨어져 빨갛게 물들었다. 달콤한 것을 가득 먹고 기분 좋아진 아기는 언제 어떤 이유로 울음을 터뜨릴지 모른다. 비위가 상하기 전에 나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목욕을 제안한다. 다행히 아기는 욕조까지 잘 따라와 주었다. 옷을 벗는 것에도 협조적이다.
따뜻한 물에 거품을 가득 풀어 동물 장난감을 물 위로 둥둥 띄워준다. 아기는 장난감을 꾹 눌러 물총을 쏘기도 하고, 냅다 던지며 꺅꺅 소리도 지른다. 아기가 물놀이에 정신을 뺏긴 사이 나도 얼른 간단한 샤워를 한다. 물장구를 치다가도 엄마, 엄마를 외치는 탓에 거품 가득 낀 얼 굴로 응, 응, 대답한다. 서둘러 양치까지 마치고 돌아보니, 아이는 몇 안 되는 장난감으로 진지하게도 놀고 있다.
발가벗은 뒷모습과 뒤통수가 오늘따라 아련하게 가슴에 박힌다. 엄마를 등진 채 놀이에 집중한 모습이 어쩐지 생경하다. 먼 훗날, 어릴 적 연우를 떠올릴 때 지금 이 장면이 떠오를 것 같은 기분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면이 하룻밤이 지나도록 아직도 잔상으로 남아서 이렇게 몇 달 만에 다시 글을 쓴다.
물론 아기와 단둘이 있으면 이런 감상에 빠질 여유가 없다. 수건을 두 장이나 쓰겠다고 울고, 머리를 말리지 않겠다고 또 울음을 터뜨린다. 내가 쓰는 화장품 공병을 손에 쥐어주고 겨우 잠옷을 입혔다. 금세 즐거워진 연우와 침대에 나란히 눕는다.
요즘 한창 빠진 그림자 극장을 켜고 백설공주 이야기를 듣는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지?' 하는 말에 '엄마' 하고 답해주는 귀여운 아기. 똑같은 이야기를 열 번이나 넘게 보면서도 그때마다 잊지 않고 엄마라고 답한다. 그리고 백설공주의 죽음에 일곱 난쟁이가 울자, 눈을 질끈 감고 함께 우는 척 엉-엉-엉- 소리를 내며 혼신의 연기를 한다. 그러면서도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방긋 웃어주는 사랑스러운 아기.
신생아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갑자기 어린이가 되어 버린 아이에게 왠지 모를 아쉬움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연우가 그림자극장을 보려 천장을 올려다보는 모습에서 신생아 시절의 짱구 같은 표정이 얼핏 겹쳐 보인다.
언젠가 내가 말간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을 때 엄마가 난데없이 내 옆모습을 보고 유치원 시절의 앳된 얼굴이 그대로 있다며 반가워한 적이 있다. 내 어릴 적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한 것이 그리도 반가울까 싶었던 그때의 내가 무색하다. 엄마처럼 지금의 나 역시 연우의 신생아 시절을 발견하고선 이리도 반가워한다.
같이 누워 있으면 엄마가 먼저 잠들어버린다는 걸 요 며 칠사이 깨달았는지, 요즘엔 자기만 눕고 엄마는 그 옆에 앉으라 한다. 토닥토닥해달라, 발바닥에 뽀뽀해 달라, 자 기 발바닥을 양쪽 볼에 갖다 대달라. 아직 말도 한마디 제대로 못 하면서 손짓 몸짓으로 하는 요구사항은 많기 도 하다.
아기 옆자리에 비집고 누웠더니 기어코 내 배 위에 엎드려 잠을 청한다. 숨도 못 쉬게 무겁지만, 동그란 뒤통수를 쓰다듬는 것이 좋아서. 납작한 아기 몸통을 양 팔로 꼭 껴안는 것이 좋아서. 도톰한 기저귀를 토닥이는 것이 좋아서. 아기가 배 위에서 뒤척일 때마다 한껏 힘을 주고선 곤히 잠들 때까지 기쁜 마음으로 무게를 견뎌본다.
작년 12월에 쓴 글을 처음으로 연재 시작합니다 :)